크리스 조던 감독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봤다. 달포 전 경주의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볼 기회를 얻었다. 이 영화는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알바트로스가 플라스틱 오염에 의해 희생되는 비극의 현장을 그렸다.
아마 죽은 새의 배 속에 비닐 조각과 라이터 등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가득 찬 사진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속의 새가 알바트로스다.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온몸이 감전되듯이 전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름다움과 파괴가 교차하는 영상과 가슴을 흔드는 묵직한 배경음악은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따금 이어지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영감이 넘쳤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새의 잔해 속에 흉측스럽게 드러난 플라스틱 무더기의 충격적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것.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인류의 처지가 알바트로스의 비참한 모습과 진배없다. 일 년 전 코로나19가 지구촌 전역을 강타하기 시작하면서 서구 근대가 이뤄놓은 물질문명의 허상이 여지없이 까발려졌다. 도시가 봉쇄되고 하늘길이 막히고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마스크를 낀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사태의 비극성을 헤아릴 수밖에 없었다. 기후위기는 코로나 사태보다 더욱 위중하다. 지난여름 한반도를 덮친 홍수와 태풍은 기상재난이 남의 일이 아님을 일깨웠다. 홍수로 논밭이 쓸려나가고 산사태가 마을을 덮치고 도시는 물에 잠겼다. 눈앞에 벌어진 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미약함을 절감했다. 기후위기도 팬데믹도 한두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녹슨 포신과 허물어진 참호가 한때 전장이었음을 말해주는 미드웨이섬에는 원시의 생명이 인간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 수천 마리의 알바트로스가 둥지를 틀고 비상을 준비한다. 가장 멀리 오래 나는 새, 알바트로스는 날개 폭이 3m가 넘는다.
어미로부터 독립한 알바트로스는 뒤뚱거리며 비행을 배우고, 거센 바람을 타고 먼 바다로 날아오른다. 한 번 날아오르면 6000~8000㎞를 땅에 내려앉지 않고, 날갯짓 없이 6일을 비행하기도 한다. 오직 바람 자락에 의지해 바다에서 번식기까지 3~4년을 보낸다. 어떤 개체는 그 기간이 10년이 되기도 한다. 번식준비가 끝나면 태어난 섬으로 돌아와 짝을 찾는다.
화면에는 떼를 지은 채 짝짓기하는 알바트로스의 춤과 노래가 가득하다. 상대를 향해 수없이 구애의 몸짓을 한다. 한 번 짝을 이루면 평생을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나중에는 그 몸짓이 거울을 보듯 똑같아진다고 한다. 알바트로스의 수명이 60년이나 된다고 하니 거의 인간과 같은 햇수를 해로하는 셈이다.
알바트로스는 한 번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 부화할 때까지 수컷과 암컷은 번갈아 알을 품고 먹이활동을 한다. 그렇게 6주가 지나면 알 속 새끼가 껍데기를 깨기 시작한다. 이틀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어미는 도와주지 않는다. 새 생명을 기다리며 노래로 격려하고 부리로 가볍게 다독일 뿐이다.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과정이 새끼의 힘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부모 새들은 새끼의 먹이를 구하러 먼바다로 나간다. 한 번에 수천㎞를, 심지어는 일주일 이상 바다를 날아다니며 수면의 물고기를 낚아챈다. 그때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 부유물도 함께 먹는다. 섬으로 돌아온 어미는 배 속에 담아온 물고기를 새끼들에게 먹인다. 알바트로스는 바다에서 얻은 먹이가 새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냥 살아있는 탯줄이 되어 바다가 주는 먹이를 취하고 그것을 새끼에게 전하는 것이다. 먹이 속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배고픈 새끼의 입에 어미가 물고기를 토해 먹이는 장면을 포착한다. 그 속에 플라스틱 잔해가 또렷이 보인다. 유독하고 날카로워 새끼의 보드라운 위장막을 뚫을 수도 있다. 섬 곳곳에는 플라스틱을 먹은 새끼 알바트로스의 사체가 널려 있다. 고통스럽게 뒤척이며 죽어가는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전개된다.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와 마구잡이 배출이 멀리 태평양 고도의 생태계를 파괴한 것이다. 알바트로스의 처지와 다름없는 인간은 어떠한가. 지금 인류사회는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기후재난의 암담한 사태 속에서도, 위기의 화근인 ‘성장 신화’에 목을 매고 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악순환 속에서 운명을 재촉한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성장에 급급한 것은 알바트로스가 플라스틱 먹이를 새끼에게 먹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알바트로스는 플라스틱이 든 먹이의 위험을 알지 못한 채 새끼에게 먹이고, 인간은 위험을 알면서도 자해행위를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알바트로스의 깊은 눈빛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맞설 용기가 있는가? 언제까지 위기를 외면할 것인가?
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