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비록 임기 말에 접어들어 불과 1년 3개월 정도의 시간을 남겨두고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 날까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들이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바로 그런 과제에 속한다. 그 과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피할 수가 없으며,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통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업은 헌법이 부과한 대통령의 엄중한 책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임기 마지막까지 비핵평화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9년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남에 따라 긴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증유의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그 대응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과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북한은 북한대로 문을 꽁꽁 닫아걸고, 다른 당사자인 미국도 대규모 코로나 재난으로 인해 비상사태 같은 상황이 계속된 데다가 대선이 있어 거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해보고자 기회를 엿보았지만, 우리 역시 코로나 대응의 엄중함에 더해 미국과 북한이 나서지 않겠다는 태세를 취해버려 아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금년은 좀 다를 것이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연초부터 백신이 공급되기 시작한 덕분에 일단 코로나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닫긴 문들이 열릴 전망이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게 된 점이 놓칠 수 없는 형세 변화라 할 수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신년초에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하여 지난 5년간의 정책들을 평가하고, 다가올 5년에 중점을 둘 정책들을 발표했다. 미국에는 새 대통령과 행정부가 등장했고, 북한은 심기일전 이후 새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국무장관이나 NSC보좌관을 위시한 외교안보팀은 북한 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혀왔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협정의 체결까지 내다보는 그들의 로드맵을 말해왔다. 방법론에 있어서는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여러 차례 천명한 바가 있다.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 국제적 압력이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2015년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이란 핵딜을 성공시킨 사람들로서 이란 핵협상이 북핵협상의 모델이 될 것임도 누누이 밝혀왔다. 북한측은 어떤가. 우선 다행스러웠던 것은 북한이 지난 2년여에 걸친 긴 교착의 시기에 판을 깨는 도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그 점은 외교의 여지를 살려두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2021년 정세 전환기를 맞아 북한은 제 8차대회에서 정리한 태세를 갖고 미국과의 대화나 구체적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 된다.
지난주 끝난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을 갖고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며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과거 여러 차례 행사에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무력시위가 등장했는데 비해 이번 대회를 축하하는 지난 14일 밤 열병식에서는 ICBM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보유한 무기 가운데 미국이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ICBM인데, 그것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고려한 행동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북한당국은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한미연합훈련과 연결짓고는 했다.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은 남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면서 남북합의 이행을 강조함과 동시에 남측도 적대행위를 중지해야 하고 근본문제부터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본문제로 한미 합동군사연습 지속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이 같은 북측의 입장에 대해 주초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3월로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한반도 비핵평화의 틀속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라 했다. 동시에 미국의 바이든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는 생각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대통령과 한미 정상 간 교류를 조속히 성사시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갈 뜻을 분명히 밝혔다. 남북정상회담도 활짝 열어두었다. 정세전환기는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임기 막바지라 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하며, 한반도 비핵평화는 중단없이 가야할 길이다. 호시우보!
경남대 석좌교수·前 주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