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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그 날을 기다리며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책임교수
  •  |   입력 : 2021-02-16 18:47:2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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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로제토는 이탈리아 이주민이 터전을 잡은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17년 동안 일한 의사 벤저민 팰컨은 65세 미만 주민 가운데 심장병 환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1935년부터 30년간 환경조건이 비슷한 주변 마을보다 로제토 주민 사망률이 35%나 낮은 원인을 지역적 특성, 유전적 요인, 식생활 습관, 운동량과 같은 요인에서 찾았지만 로제토 주민은 흡연과 음주도 많이 하고 비만인 사람도 많았다. 이탈리아의 전통대로 음식과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자주 어울리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서로 존경하고 협조하면서 살아가는 ‘확장된 가족 집단’이 장수의 비결이었다.
   
베를린 시내를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에서 와인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사람의 사망위험도는 건강에 좋은 식단을 실천하면 20%, 적당한 운동은 20~30%, 가족 및 친구와 튼튼한 지원망을 형성하면 45%까지 낮아진다고 한다. 혼자 살면서 건강식을 챙겨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보다 적당히 기름진 음식과 와인을 즐기면서 친구,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훨씬 더 장수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로제토 효과’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젊은 세대가 이웃 간 교류보다 울타리가 세워진 쾌적한 단독 주택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70년대 말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서로 존중하고 협조하던 전통적 생활 방식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건강도 잃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유명작가이자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애정결핍, 속물근성, 지나친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등이 불안을 가져온다고 했다. 불안이라는 감정 앞에서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구글의 피플애널리틱스(people analytics)부서는 2015년 11월, 높은 성과를 내는 팀의 비밀을 확인하기 위한 흥미로운 내부 프로젝트 결과를 공개했다. ‘심리적 안정감’이 높은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들(팀원들 간의 높은 상호 의존성, 명확한 업무구조와 역할 배분 등)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공동체가 해체되고 사랑과 정서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지지 체계가 없어지고 있다.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에도 가족이 함께 모이지 못하게 하는 힘든 현실. 이 마당에 와인한잔 같이 마시자고 모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영업시간 제한과 사적모임 금지로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와인 소매의 경우 혼술, 집술이 대세가 되면서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가족으로 국한된 정서적 지원의 한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 마시며 웃고 떠드는 심리적 안정감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면 우리 모두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치지 않는 비를 본 적은 없다.

   
언젠가 다 같이 모여 와인 한잔 할 수 있는 날, 와인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자. 기억나는 와인, 기억나는 사람, "그렇다"고 긍정하는 삶이 필요한 시절이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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