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미국의 영화사 ‘소니 픽처스’가 발칵 뒤집혔다. 북한이 소니 픽처스가 만든 영화 ‘인터뷰’를 개봉할 경우, 해당 국가에 무자비한 보복을 가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 내용이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과의 인터뷰 기회를 잡은 토크쇼 사회자와 연출자가 미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김정은 암살 지령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인데, 최고지도자의 존엄을 가장 중시하는 북한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해 11월, 소니 픽처스는 ‘평화의 수호자’란 단체로부터 해킹 공격을 받았다. 소니 픽처스 최고경영자(CEO)와 연출자가 나눈 밀담과 직원 연봉 등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그 중에는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도 있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해킹 공격에 사용된 악성 코드에서 북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의 흔적이 발견된 점 등을 근거로 공격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 북한의 테러 위협에 겁먹은 소니 픽처스는 영화 개봉을 취소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번복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가 지난 17일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의 연루자를 비롯한 북한 해커 3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슬로베니아 기업(7500만 달러), 인도네시아 기업(2500만 달러), 뉴욕 은행(1180만 달러) 등 전 세계 기업과 은행에서 해킹을 통해 13억 달러(1조4000억 원)의 현금과 가상화폐를 훔친 혐의다. FBI는 뉴욕 은행에서 훔쳐 가상화폐 거래소에 보관 중이던 190만 달러어치의 가상화폐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한다.
가상화폐를 노린 북한의 해킹은 이뿐만 아니다. 유엔 안보리의 전문가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이 2015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17개국의 금융기관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35차례의 해킹을 시도해 20억 달러어치를 훔친 혐의가 적시돼 있다. 북한 정보기술(IT) 인력이 중국에서 비트코인 채굴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채굴 금액이 매년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 맞선 자구책이다.
마침 테슬라 등 세계 유수 기업의 투자에 힘입어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5만2000달러(5700만 원)를 돌파하는 등 가상화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경제의 영향이 크다. 북한의 가상화폐 수입은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추산된다. 제재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역시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시대, 북한 문제도 갈수록 풀기 어려워진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