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대단히 억울했던 모양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이 최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브리핑 내용 중 일부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종용하고, 이 자리에 청와대와 환경부가 점 찍은 인물들을 앉힌 혐의로 기소됐다. 강 대변인은 “재판부 설명 자료 어디에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감시나 사찰 행위도 없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청와대가 이처럼 ‘블랙리스트’란 단어에 민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박 정부의 대표적 적폐로 꼽혔던 블랙리스트가 대상이 다르긴 해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있었다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허무는 꼴이기도 하다.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 수사관의 폭로로 이 의혹이 불거졌던 당시에도 이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 체크리스트’일 뿐이라고 청와대는 주장했다. 하지만 야당이 제기한 블랙리스트 프레임은 강했고, 결국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일반에 각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 밖으로 김 전 장관이 법정구속까지 되자 다시 한번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청와대 주장처럼 도매금으로 취급되긴 어려운 측면이 있긴 하다. 수많은 문화인사 명단을 작성해 불이익을 줬던 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단순 비교해 같은 말로 낙인찍긴 어렵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의 혐의 또한 정권 교체기면 으레 이뤄졌던 관행이라면 관행이었다. 김 전 장관이 “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정부가 새 정책을 시행할 사람을 발굴하고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막는다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라며 무죄를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더하다면 더했을 이명박 박근혜 정권처럼 관행일 뿐인데 엉뚱한 프레임에 희생됐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해도, 1심 판결은 블랙리스트냐 아니냐가 아니라 고질적인 낙하산 인사 관행에 대해 단죄를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1심 재판부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이전 정권에도 비슷한 관행이 있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같이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 설령 이전 정부에서 이 같은 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며, 폐해도 매우 심각해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이라고 못박았다. 그 관행에 대한 단죄 대상이 왜 자신이어야 하느냐고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행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까닭이다.
물론 아직 1심 판결일 뿐이니 상급심 판단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불법이든 아니든, 이번 판결이 뿌리 깊이 이어져온 관행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다. 이번 재판에서도 쟁점이 됐듯이, 공공기관 등에 무차별적으로 내리꽂는 낙하산을 어디까지 불법으로 봐야 하는가도 숙제로 떠올랐다. 사실 낙하산이라는 부정적인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긴 해도, 정권 교체기에 벌어지는 공공기관 등 인사를 일괄적으로 그리 부르기는 힘든 측면도 있다. 새 정권이 과거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와 새 그림을 그려나가기란 쉽지 않아서다. 정권 교체기마다 코드니 낙하산이니 하며 야당에서 비판을 하더라도 이내 잊혀지고 그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를 되풀이하는 이유다.
그러니 청와대는 블랙리스트라는 낙인 때문에 과도하게 법원이 판단했다고 억울해할지는 모르겠다. 낙하산 인사가 이전 정권처럼 노골적이지도, 광범위하지도 않았다며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정권이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전 정권의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던 촛불 정권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관행이든 아니든 불법적이라는 법원의 단죄에 지나치게 억울해 해선 안 된다. 가뜩이나 현 정권은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내로남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행이라며 슬그머니 물타기 하려는 것은 촛불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면 결코 떳떳한 태도가 아니다.
야당이라고 이번 판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사찰 DNA가 없다고 호언장담 하더니 그 누구보다 사찰에 진심인 정권의 민낯이 드러났다. 내로남불이 끝이 없다”고 비판했다. 현 정권에 대한 내로남불 비난까지야 그렇다 쳐도, 향후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관행으로 치부되던 낙하산 인사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시험대에 섰다. 그렇다고 해서 낙하산 관행이 단박에 사라지리라 보는 이는 거의 없지 싶다. 다만 더는 내로남불이 없도록 차제에 여야 모두 보다 엄격한 잣대를 마련해야 할 전환점임은 확실하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