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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목소리를 낮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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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1-03-11 19:13:2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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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면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기억들이 있다. 가령 도처에 CCTV가 설치되던 무렵 방송 토론장에 나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던 일이다.

개인의 사적 공간은 참으로 중요하다며 사생활의 국가 관리를 빅브라더에 비유해 크게 비판했다. 그후 2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좀도둑 등의 치안범죄는 현저히 줄었고 그렇다고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도 아니다. 국가별 CCTV 설치율에서 한국이 9위 정도라는데 이만하면 적절히 통제되는 수준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도시환경에서 이면의 감시자 역할을 하며 안전을 도모해 주는 폐쇄회로 TV에 지금 나는 어떠한 저항감도 느끼지 않는다.

지나고 보니 잘못 생각했다고 판단되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참회록처럼 내 개인의 오류 목록을 작성한다면 수십 가지가 될 것이다. 대학시절 꽤 신망 있는 교수 한 분이 한글 전용에 엄청나게 비판적이었다. 우리말의 뿌리 대부분이 한자 기원인데 한문을 버리면 사고의 깊이를 잃게 된다는 그분 주장에 설득됐었다.

국문과 출신으로 곧장 대학원에 진학한 우리 또래는 ‘은, 는, 이, 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단어를 한자로 썼는데 생각해 보라. 지금도 대부분의 단어를 한자로 적고 있다면 디지털 속도 경쟁에서 한국이 어떻게 앞질러 나갈 수 있었겠는가.

한때 커다란 사회적 화두였던 강소국론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조선 같은 선진 강국의 업종과 직접 겨루기 보다는 대만을 모델 삼아 소재, 부품, 장비 생산을 위주로 하는 중소기업 업종에 주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강소국론이다. 이에 따른 3만 개 중소기업 중점 육성안이 과거 민주당 계열 대선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다.

만일 강소국 지향이 채택돼서 국가의 연구개발비 지원이 그쪽으로 흘러갔다면 G7의 일원을 넘보는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지 모른다. 사적 논쟁 자리에서 재벌 대기업들의 폐해를 역설하며 강소국만이 살 길이라고 침을 튀기던 내 모습이 후회된다.

잘못 생각했다고 느껴지는 항목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공장형 아이돌을 양산한다며 무턱대고 비판했던 케이팝 산업에 대한 인식도 정면으로 바뀌었다. 10대 소년 소녀들이 오직 성공해 보겠다고 ‘피땀 눈물’로 육성되는 연습생 제도에서 어떤 예술이 싹트겠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중음악은 산업의 영역으로 변화된 지 오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떠받드는 클래식 아티스트들은 심지어 3, 4세 무렵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앞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경우가 태반이다.

또래 연령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니냐는 말도 줄곧 했었다. 잘못 생각했다. 행복하고 느슨한 청소년기를 반납한 대신 살벌한 교육경쟁 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이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첫 번째 무기였다. 그 바람에 청소년 자살이 만연하고 비인간적인 교실 환경이 조성된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는 있지만 어쨌든 한국의 교육입국은 대다수 저개발 국가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줄줄이 이어지는 나의 오류노트를 잠시 접고 주위를 둘러본다. 60세가 넘은 이들이여. 지금 어떤 증상들을 겪고 있는가. 기존 지식은 자꾸만 빠져나가고 새로운 지식은 도무지 입력되지 않고 오직 하나, 매사에 주장만이 선명하게 남지 않는가. 그렇다. 다각도로 판단해 볼 사고의 디테일은 사라지는 대신 완강한 주장과 고집에 사로잡히는 것이 늙음의 증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확신에 찬 목소리를 높이는 세대가 노령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례없이 척박한 환경에서 대성공을 경험한 자수성가형 세대 특징이기도 하고,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반면에 자산과 의사결정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세대가 또한 한국의 노령층이기도 하다. 60, 70대들이 둘러앉아 ‘젊은것들이 뭘 아느냐’ 하는 개탄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 몇 해 동안 가장 중대한 사회 동향으로 인식되는 4차 산업 분야를 이해해 보고자 노력했다.

딥러닝이 뭔지 90분 연쇄 강의도 여러 차례 들어봤고, 인문학과 연관해 데이터 사이언스, 그중에서 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라는 것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것은 수학과 통계학에 기초하고 있었고 초보적인 의견조차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지금 정치담론에 골몰하는 노령층이여. 세상은 더 이상 확신에 찬 주장으로 가동되지 않는 곳에 도달해 있다. 좌익, 우익 따위의 편 가르기는 그저 익숙한 패거리 놀음일 뿐 더 이상 사회동력도 뭣도 아니다. 이제는 목소리를 낮추고 뒤에서 지켜보는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그리고 또래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이다.

시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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