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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피로 물든 미얀마의 봄 /이은정

수치고문, 작년 총선서 압승…군부, 결과 불복 2월 쿠데타

미·중 패권경쟁 새 무대 부상 미얀마 항거, 광주 항쟁 닮아…국제사회, 민주화열망 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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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우리에게 ‘버마’라는 국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폭발 사건 영향 때문이다. 북한 공작원 3명이 버마의 군사독재를 배우기 위해 방문 중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터뜨렸다. 이로 인해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국호를 미얀마로 바꾼 이 나라에서 2015년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끌던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의 총선 승리로 53년 만에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녀와 남편이 영국 국적자인 이유로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국가고문역 겸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돼 실권자가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수치 국가고문은 군사정권에서 15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한 정치범이자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2017년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종교적 탄압 등에 반발한 이슬람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 일부가 경찰 초소를 공격했고 미얀마군이 대대적인 토벌을 한 후 그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평가는 달라졌다.

수치 고문이 침묵하거나 군부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여 인권단체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수치 고문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로힝야족을 소탕한 군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다수 국민인 버마족의 지지를 잃을 수 있고 이들을 지지하면 국제적 명성이 붕괴되는 것이다. 수치 고문은 결국 후자를 선택하면서 버마족의 지지를 받게 됐고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NLD가 압승했다. 이 총선에서 의석 확대를 노렸던 군부는 부정선거 조사를 명분으로 총선 결과 수용을 거부했고 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의 민주화 행보는 우리의 역사와 닮았다.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를 겪으며 군부의 통치를 받았고 1988년에는 군부 독재에 항거한 대규모 반군부 민중항쟁인 ‘8888항쟁(1988년 8월 8일의 대규모 시위)’이 일어났다. 이후 군부 통치가 이어졌지만 지난해 NLD의 총선 승리로 민주화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됐다.

안타깝게도 지난 2월 군부가 수치 고문을 감금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다시 혼돈의 시대를 맞게 됐다. 현재의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1980년 5월 전두환 군사독재 세력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한 ‘5·18 광주항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광주항쟁처럼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은 치열하다.

공무원 학생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시민은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에 저항하고 있다. 군인들은 시위대를 붙잡아 사정없이 발길질하고 아무런 경고 없이 시민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있다. 시민은 여성 치마 ‘타메인’을 활용,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사망한 시민은 100명이 넘는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민이 쓰러질지 모른다. 1980년대 광주와 달리 미얀마 사태는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민의 처절한 저항에도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안보리는 규탄 성명서를 채택했고 미국이 수출규제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대외 경제 의존도가 낮다 보니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미얀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중 간 패권 다툼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중국의 핵심 대외 전략인 ‘일대일로’ 전략 실현에 필수적인 접경 국가이면서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 인도 호주와 쿼드(Quad)라는 안보협의체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인도양과 태평양 일대에서 크게 포위해 견제한다는 계획인데 중국이 미얀마 서부에 항공모함과 같은 군사시설을 갖추게 되면 미국은 물론 인도까지 엄청난 군사적 위협을 가해 쿼드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강대국의 패권다툼으로 국제 사회는 강력하게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미얀마의 유혈사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무고한 인명 피해를 막으려면 국제사회가 이해관계를 떠나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무역 금융 제재를 포함한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얀마 군부를 최대한 압박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결집해 압박을 최대한으로 행사할 수 있는 곳은 유엔이다. 유엔은 쿠데타 세력을 규탄하는 성명서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해 미얀마 군부를 압박하고 미얀마 시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답해야 할 것이다.

편집국 부국장 ej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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