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재검토위)가 특별법 제정을 포함한 ‘권고안’을 발표하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러자 처리 해법도 제대로 도출하지 못한 채 21개월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재검토위가 내놓은 186페이지 분량의 권고안은 “올해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논의가 시작된 지 43년이 됩니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을 시작한 이후,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매년 사용후핵연료는 쌓여만 갈 뿐 근본적 해결을 위한 걸음은 못내 더디기만 합니다”로 시작한다.
사용후핵연료가 무엇이기에 43년 동안 대책을 못 세운 것일까. 쉽게 이해하려면 2016년 개봉한 영화 ‘판도라’를 떠올리면 된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김남길이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맞이한 곳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수조였다. 지진으로 수조에 균열이 생겨 냉각수가 새자 목숨을 걸고 막은 것이다. 원전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생명과 바꾸면서 방사능 유출을 저지했다면 사용후핵연료가 얼마나 무서운 물질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남은 핵연료를 말한다.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이 강하고 높은 열을 내기 때문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된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이 낮아지려면 최대 30만 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위험한 물질인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관리 대책이 43년 동안 수립되지 않았다. 워낙 위험해서다. 그동안 정부는 9차례나 관리시설 부지 선정을 시도했지만 지역민의 반발과 지질 안전성 등에 막혔다. 부지 선정은 고사하고 선정 절차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영화 판도라처럼 원전 부지 안의 임시저장시설에서 보관하고 있다. 제대로 관리하려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갖춰야 한다.
더욱더 우려스러운 부분은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점이다. 2019년 6월 기준 고리 3·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은 각각 94.2%와 94.9%다. 2031년이 되면 고리원전 1~4호기 전체 저장률이 10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을 만들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을 처음으로 수립한 것이다. 그때 계획을 보면 주민 동의를 얻어 관리시설 부지를 확보하는데 무려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부지가 선정돼도 중간저장시설,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 영구처분시설 건설 등에 30여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시 계획에서 영구처분시설 가동시기를 2053년으로 예측했다. 로드맵 수립 37년 후다.
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핀란드는 2015년부터 지하 450m 깊이의 암반에 영구처분시설을 건설 중이다. 2023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철저한 지질 조사와 정보 공개로 주민 동의를 구하면서 진행한 것이 30년이 넘었다. 프랑스와 스위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정도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다. 불과 10년 후면 고리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꽉 찬다. 그런데 아직 부지 선정은 고사하고 권고안을 발표하는 수준이다. 10년이란 시간이 남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앞서 보았듯 부지 선정에 10년 이상 소요된다.
여기서 친원전이냐, 탈원전이냐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원전을 건설해도 사용후핵연료를 해결하지 못하면 원전을 가동할 수 없다. 원전 해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면 원전 해체도 쉽지 않다.
한 전문가는 “원전은 발전과 사용후핵연료라는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 칼의 한 면이 우리를 겨누고 있다. 원전 곁에서 삶을 이어가는 부울경 주민이 가장 섬뜩하게 느낀다. 더는 시간이 없다. 하루빨리 해결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만약 해결하지 못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경제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