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슴 가리개를 단단히 조여 맨다. 어머니의 한복 속치마를 잘라 옆구리에 운동화 끈을 매단 수제 속옷이다. 마치 조선 왕실의 유물을 닮은 듯도 하다. 여자로 태어난 자신의 몸을 거부하는 여자. 면도를 하고 머리를 짧게 깎고, ‘말기’라고 부르는 가슴싸개로 꼼꼼히 여미어 몸의 굴곡을 숨긴다. 여성의 매력을 돋보이려 가슴 확대수술을 하는 시대에 절벽 가슴이 되어 셔츠를 덧입는다. 완벽한 남장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인 이묵의 일상이 시작된다.

스스로 자신의 성(性)을 선택하고 평생을 남자로 살아왔다. 많은 여자를 사랑했고 또 떠나보냈다. 그저 한없이 불온한 존재, 기이한 사람, 어쩌면 혐오스러울지도 모를 인간,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비난에 싸인 자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미련이나 후회를 가져 본 적 없듯이, 멸시 속에서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일흔의 레즈비언인 속칭 ‘바지 씨’라 불리는 사람. 여자지만 남자로 사는 삶처럼 그를 지탱해준 이름도 여러 개다. 부모님이 주신 이름은 ‘순심’, 거주지에서는 ‘김승우’라는 남자로, 젊은 시절 친구가 지어준 이름 ‘이묵’으로도 살았으나, 무엇보다 ‘바지 씨’라 불리는 생을 견뎌내었다. 지금처럼 게이나 레즈비언이나 양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성소수자 혹은 퀴어라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던 시대에 ‘바지 씨’는 통상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지칭하였다.

반대로 여성적 젠더를 실천하는 사람은 ‘치마씨’로 불렸다. 불온하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말. 나와 다르다면 편견과 낙인이 찍히고 만다. 바지 씨 이묵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를 제작한 이영 감독을 비롯한 방송인이자 사업가인 홍석천, 가수이자 모델인 하리수 등의 성소수자와 더불어 우리는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속여 가며 때로는 투명인간이나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런데 바지 씨처럼 불온하다고 여기는 삶을 당당히 드러내는 방식은 넘어야 할 벽에 대한 투쟁과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바지 씨의 삶을 들여다보다가 불현듯 가까이 지내던 한 아이를 떠올려 본다. 양쪽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운명. 부모는 딸로 키우기로 마음먹었고 유치원 때까지의 사진은 모두 여아였다. 그러나 아이의 행동이 점차 과격해지고 검사 결과 사내아이의 특성이 우세해지자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는 다시 남자로 바뀌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진짜 성징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쩌면 남녀추니라는 외형이 무슨 소용인가. 그리스로마신화의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양성을 모두 지닌 완벽한 존재이듯 아이 또한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

비로소 그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자각한다. 내 주변에 사는 이웃들이니까. 내가 만난 그 아이도 이제 평범한 청년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해한다고, 비겁하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 가족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정으로 그들의 세계에 관대해질 수 있을까. 아는 척, 아닌 척, 이해하는 척 위선으로 분장하고 가면을 쓴 이중적 마음은 아닌지. 비단 성소수자 문제만 그럴까. 그러면 과연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누가 불온한 당신인가.

그가 가슴가리개를 정성스레 빨고 널던 장면에서 언젠가 읽었던 어느 수필가의 글이 겹쳐진다. 한쪽 가슴 제거 수술을 한 어머니가 나일론 싸구려 브래지어 한쪽에 재활용 거즈를 접고 또 접어 도톰하게 만들어 사용했다던 속칭 ‘어머니의 뽕브라’. 그 아들이야 뒤늦게라도 회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저 외로운 이의 속옷은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그러나 빨랫줄에 걸린 사춘기 딸의 브래지어를 두고 목련꽃 송이를 떠올린 ‘목련꽃 브라자’란 시처럼 그의 가슴 가리개 또한 한 사람에게는 눈부시게 빛난 삶의 꽃이었다.

영화 말미, 이묵이 가슴을 조이며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어. 괴로워도 말 못 했지. 그런데 우리 후배들은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묵은 2017년 4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타계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문학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