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귀향길,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에 갇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게다. 둘러서 갈 수 있는 우회로의 소중함을. 삶 역시 마찬가지다. 최선책을 찾기 어려울 때를 대비한 차선책, 차차선책의 우회로가 필요하다. 플랜B, 플랜C 등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일처리 또한 무능하다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문화는 오랜 세월 그런 다양한 삶의 우회로가 쌓여 만들어진 인간 정신의 결정체다. “작품이란 작가가 처음으로 가슴을 열었던 두세 개의 단순하면서도 심원한 이미지를 예술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되찾는 기나긴 도정”이라는 작가 카뮈의 통찰도 같은 맥락이다.
우회로의 절정은 전지전능한 신에 의지해 불완전한 인생을 추스르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다. 철학자 니체는 “사랑 복음의 화신인 나자렛 예수.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지은 자에게 축복과 승리를 가져다 준 이 구세주가 바로 유대적 가치와 이상 혁신의 유혹이며 우회로가 아니었던가”라고 했다. 비록 그가 “신은 죽었다”며 초현실적 가치에 기반한 기독교 문명의 허구성을 비판했지만, 이 철학 역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우회로다.
인간사가 이런데도 우리 일상은 최단 거리로 질러가려는 지름길 찾기에 붙박여 있다. 최근 수에즈 운하를 지나던 컨테이너 선박의 좌초로 세계적인 물류 마비 현상이 초래된 게 그 폐해의 하나다. 지구온난화를 촉진하는 난개발과 고속 압축성장 끝에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초래한 현대 문명에선 그 폐해의 결정판을 본다. 최상의 대안은 우회로다. 천천히 걸으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곰곰이 성찰할 여유를 갖기 위해서다. 때마침 좋은 안내자가 등장했다. 제주도와 티맵모빌리티가 공동 시행하는 ‘느린 길 내비게이션’ 사업이다. 서귀포 성산 등 제주도내 7개 권역을 연결하는 50개 경로의 우회로 정보를 휴대폰으로 제공한다. 제주공항에서 성산일출봉으로 이동할 경우 기존 내비게이션은 97번 도로(번영로) 등 빠른 길을 추천하나, 느린 길 내비게이션은 한라생태숲 등 우회로를 안내하는 방식이다.
느린 길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우회로를 느릿느릿 걸으며 ‘지름길 강박증’을 반성하다 보면,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제주 앞바다의 황금빛 일출처럼 불쑥 머리에 떠오를지도 모른다. 류시화 시인의 주옥 같은 글은 그 산책의 유익한 동반자가 될 듯하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준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