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초반을 강습한 미세먼지에 만개하던 봄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도시의 숨통을 터주던 산들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한 치 앞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비로소 미로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어떤 기시감이다.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인류의 잿빛 미래인가.
얼마 전 지켜본 먼 나라의 한파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언론은 한동안 텍사스의 참담한 재난 현장을 퍼 날랐다. 블랙아웃된 도시, 얼어붙은 일상은 영화 ‘투모로우’를 연상시켰다. 실내에 고드름이 달리고, 열매를 매단 오렌지 나무는 얼음덩이가 됐다. 전기와 물이 끊긴 도시는 완전히 마비됐다. 탈출하는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뒤늦게 그곳이 미국의 남단, 멕시코와 접경 지역이고 겨울에도 섭씨 10도 안팎의 따듯한 곳이란 점을 떠올리면서 끔찍함을 더했다. 고도의 문명도 자연의 역습 앞에 무력했고, 세계의 에너지 수도도 한파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반도도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이상 난동에 이어 봄 냉해, 여름의 긴 장마와 홍수, 태풍을 겪으면서 기후위기가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태풍도 네 차례나 엄습했다. 전체 경지면적 10%에 달하는 20만ha가 침수 홍수 태풍의 재해를 입었다. 작황이 나빠졌고, 농산물 수급에 커다란 차질이 생겼다.
문제는 이러한 기상재난이 갈수록 도를 더하면서 일상화된다는 데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지구촌 곳곳이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 영국 기상청 등 유력한 기후연구기관들은 21세기 말 평균기온이 섭씨 5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2도가 오르면 물 부족 인구가 50% 늘어나고 생물종 20~30%가 멸종한다.
해수면도 0.3~0.9m 높아져 부산이 반도로 바뀌고 인천공항은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5도가 오르면 인류는 지구상에 생존할 수 없다.
인류를 존망의 갈림길에 서게 한 기후위기는 지구의 온난화에서 비롯됐다. 온난화의 가장 큰 요인으로 온실가스를 꼽는다. 이산화탄소 등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지구생태계가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태계의 고리가 끊긴 것이다. 석유문명 속에서 인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풍요와 편리를 누렸지만 온난화라는 재앙의 씨앗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인류는 불과 200여 년 동안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 동안 축적돼온 한정된 자원을 마구잡이로 ‘약탈’하면서 성장신화에 중독됐다. 경제학자나 위정자들은 성장하지 못하면 세상이 결딴날 듯이 호들갑을 떤다. 장삼이사들도 어느덧 성장신화에 물든 채 ‘물신의 시장’에 빠져 허우적댄다. 유한한 자원으로 무한성장을 꿈꾸는 자체가 어리석은 망상일 뿐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은 금세기말까지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기온을 섭씨 2도 이내 상승으로 억제하자며 탄소 배출량 감축을 선언했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제48차 정부간기후변화협약(IPCC)에서 195개국이 합의한 ‘지구온난화 1.5도 보고서’는 억제 폭을 1.5도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2030년까지 2010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 줄이고 2050년엔 ‘순배출 제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1차에너지의 50~65%, 전력에너지의 70~85%까지 높여야 한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성장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가 주로 경제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2050년 순배출 제로를 선언하고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현하겠다는 의지, 구체적 실행 복안이 준비돼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2050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류는 해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15%씩 줄여야 한다. 외환위기(IMF)때 우리 경제규모가 그 정도 줄었고, 코로나로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졌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15% 줄었다고 한다.
특히 제조업을 통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있어 순배출 제로는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일자리가 줄고 소득이 급감하며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한 사태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마련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기후위기의 엄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 신화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이너스성장에 대비한 분배의 재설정, 노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욕망을 낮춰 씀씀이를 줄이는 고통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인류공동체는 기후위기를 절박하게 인식하고, 위기를 넘기 위한 공감대를 이루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류문명의 지속을 위해 지금 당장 선택에 나서야 한다. 성장이냐 생존이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살림부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