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리퍼블릭칸 블루(Republican Blue)’라는 말이 있다. 선거 당일 날씨가 맑으면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젊은 사람들이 야외로 놀러갈 가능성이 높아 공화당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이 잿더미일 때 선거날 비가 오면 집안에 하나 뿐인 우산을 아버지가 갖고 나가 투표 후 동네 술집으로 향하는 바람에 자녀는 투표장에 갈 수 없었다. 보수 자민당은 궂은 날을 선호한다는 말이 이때 유행했다. 호주의 연방선거나 주선거는 대부분 초가을이나 늦가을이다. 날씨가 선선하고 청명할 땐 유권자들의 기분까지 좋아져 그냥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발동한다고 한다.
비가 오면 진보, 맑은 날은 보수에 유리하다는 속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그러나 실제 한 연구팀이 1960년부터 2014년까지 대선 6회, 총선 16회, 지방선거 6회를 분석해보니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 투표율은 물론이고 특정 진영 유불리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은 투표소까지 접근성이 좋아 날씨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권에 대한 호감 혹은 분노의 정도가 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지난 2, 3일 치러진 4·7 부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의 평균 투표율이 20.54%를 기록했다. 전체 사전투표로는 2020년 21대 총선(26.69%)과 2017년 19대 대선(26.06%)에 이어 세번째로 높고, 재보선만 따지면 역대 최고다. 부산은 18.65%, 서울은 21.95%였다. 코로나19가 4차 대유행의 기로에 있고 투표 둘째 날에는 제법 촉촉하게 봄비마저 내렸는데도 유권자가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2013년 4월 재보선 때부터 부재자투표를 대신해 도입된 사전투표는 지금까지 총 14번(본선거와 동시 실시 포함) 시행됐다. 사전투표는 선거 절차의 일부일 뿐이지만 최근에는 그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인식되기도 한다. 사전투표율이 최고였던 21대 총선에서 사전투표가 전체 결과를 뒤집은 지역구가 실제로 여럿 나왔다. 부산과 서울 양쪽 모두에서 고전 중인 여당이 재보선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이번 투표율에 고무돼 “숨어있던 ‘샤이 진보’가 움직였다”고 기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야당은 야당대로 “정부 여당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일어선 결과”라고 맞서고 있다. 표심을 움직인 건 외적 요인일까 내적 요인일까. 해석이야 각자 마음이고, 진짜 내막은 이틀 뒤면 나온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