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외신을 통해 전해진 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영국 런던 시내 한 공원 잔디밭에 시민이 삼삼오오 모여 봄기운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특별하달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장면일 뿐인데도 시선을 붙잡은 이유는 그들 중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월만 해도 하루 코로나19 확진자가 7만 명에 육박하자 정부가 “집에 머무르라(stay at home)”며 전면적인 봉쇄령을 내렸던 영국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지난 최근 전면 봉쇄령이 일부 해제되면서 시내 곳곳이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지난 달 31일(현지시각) 영국의 확진자 수는 4052명이었다. 같은 날 프랑스 4만1907명, 독일 2만825명으로 대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때 코로나 확산세가 가장 심했던 영국이 이처럼 달라진 주요 이유는 다름 아닌 백신에 있다. 지난 해 12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이후 현재 전체 인구의 46%가 1회 접종을 끝냈다. 이스라엘(57.8%) 다음으로 높다. 접종을 빨리 시작한 미국(29.3%), 프랑스(11.9%), 독일(11.3%)에 비해서도 확연히 높은 수준이다. 이런 속도라면 올 여름이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리는 자유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했다. 아직 더 두고봐야겠지만 현재까지는 확연히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상황이 이러니 지구촌에서 백신 확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세계 최대 백신 시설을 갖춘 인도는 자국 우선 공급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을 잠정 중단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영국 역시 유럽연합(EU)과 계약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일정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EU 회원국 간 갈등도 불거졌다. 백신이 부족한 5개국에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하는 데 대다수 회원국이 합의했지만, 일부가 자국 몫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다. 우려했던 백신 민족주의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은 국민 수요의 2배에 달하는 물량을 확보했다. 반면 저소득 67개 국가 국민의 90%가 올해 안에 접종을 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의 공평한 공급을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백신 확보전에 뒤늦게 뛰어들었는데 기존 확보 계획마저 여의치 않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반기에 1200만 명을 대상으로 최소 1차 접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내에 들어왔거나 구체적 일정이 나온 물량은 904만 여명 분에 불과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부족분을 2분기에 일부라도 들여와야 하지만 대략적인 계획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2차 접종용 일부를 1차에 접종하거나 1·2차 접종 간격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이대로라면 3분기까지 차질이 이어져 11월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목표는 물 건너 갈 수가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코로나 확산세는 4차 대유행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최근 하루 확진자가 500명대를 웃도는가 하면, 부산 등 비수도권 집단감염이 심상치 않다. 거기다 전체 확진자의 4분의 1가량이 감염경로 미상이다. 500명대에서 1000명대로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 해 12월 상황이 재연될 조짐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우세종이 되며 재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도 국내에서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 1년 여 어렵사리 몇 차례 고비를 넘겨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고약해지고 있다.
한때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영국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지금 와서 지난 해 늑장대응 했던 우리 정부의 백신 확보전을 탓해 봤자 도움될 것도 없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정부가 최근 가동을 시작한 ‘범정부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TF)’의 역할이 막중하다. ‘3차 세계대전’으로 비유될 정도의 세계적 백신 전쟁에서 또 다시 낙오하는 일만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명당 백신 접종 횟수는 1.6회로 세계 평균 7.2회에 비해 턱없이 적다. 11월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목표마저 어그러진다면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백신이 가장 유력한 대안이긴 해도 전부는 아니다. 아직 접종이 본격화하지 않은 마당에 백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자칫 방역 의식을 흐트릴 수 있어서다. 실제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기도 했지만 국내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방역 의식이 느슨해진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영국에서 최근 확진자가 급감한 것은 단지 높은 백신 접종률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석 달에 걸친 강력한 전면 봉쇄령이라는 고통을 국민이 감내한 결과이기도 하다. 오는 11월까지 백신과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