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양식(洋食)하면 서양음식을 떠올린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양식을 서양음식으로 해석하는 건 우리의 관점이다. ‘양식’이라는 단어를 만든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식으로 변형된 서양음식’이 더 정확한 의미다. 그러니까 양식은 서양의 어느 나라 음식도 아니고 그냥 일본음식의 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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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요구에 의해 탄생한 한국식 돈가스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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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텐무왕이 675년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래 무려 1200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서양처럼 문명국가가 되고 서양인처럼 큰 체격을 가지려면 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셔야 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육식을 독려했다. 가장 선봉에 선 인물이 일본 만 엔짜리 지폐의 모델인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서양의식주’ ‘육식지설’ 등의 저작물을 통해 육식을 적극 권장했다.
하지만 그건 19세기 후반에 서양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일본 지도층의 입장이었다. 평생 고기를 먹어본 적 없고, 도구라고는 젓가락만 사용해본 서민들에게 서양음식은 낯설고 불편했다. 이 어색함을 해소해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고기로 만든 음식인데 고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야했고, 포크와 나이프 없이 젓가락만으로 먹을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밥반찬이 되어야 했다.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즐겨 먹었던 ‘포크커틀릿(pork cutlet)’이었다. 일본은 포크커틀릿을 활용해 무려 35년 만에 ‘돈카츠’를 탄생시켰다. 일본에서는 이런 음식을 통틀어 일본음식과 서양음식이 결합됐다는 뜻으로 ‘화양식’ 혹은 ‘화양절충요리’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는 서양을 닮는 것이 곧 근대라는 일본의 국가주의와 계몽주의가 철저하게 개입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화양식이 서양음식으로 둔갑해 들어왔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65년 한일수교 때까지 일본과 단절의 시간이 생긴다. 대신 이 땅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진짜 서양음식이 상륙한다. ‘어느 나라 것이 진짜’인지 가릴 여유가 없었다. 나라 전체가 굶주리는 판국에 절충이니 뭐니 한가로이 따질 형편도 되지 못했다. 국가가 개입하는 대신 대중 스스로 절충을 시도한다. 지난 50년 동안 포크커틀릿이 한국식 돈가스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칠게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포크랑 나이프가 불편해? 그럼 이거 써” 하면서 수저통을 같이 놓고, “고기가 작아서 섭섭해? 그럼 얼마든지 늘려줄게” 하면서 망치로 두드려 왕돈가스를 만들고, “김치 없이 먹으려니 섭섭하지. 단무지도 같이 줄께” 하면서 김치랑 단무지를 곁들이고, “고기 먹는데 풋고추 없으니 느끼하지” 하면서 풋고추랑 쌈장을 제공하고, “밥 먹을 땐 수프보다 찌개가 낫겠지?” 하면서 돈가스백반까지 만들어 버렸다.
나도 한때는 일본음식을 동경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맥락 없이 만들어진 한국식 돈가스를 촌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양을 닮고 싶어 안달 난 일본식 돈카츠보다 대중의 일상 속에서 진화해온 한국식 돈가스에 훨씬 마음이 간다. 우리는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탄생된 한국음식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