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의 운명은 1981년 9월로 예정된 독일 바덴바덴 IOC 총회를 불과 5개월 앞둔 시점까지도 불투명했다. 대통령 시해, 신군부 쿠데타, 광주 항쟁 등 국내 상황이 우선 복잡했다. 밖에선 구 소련 등 공산권의 방해마저 심했다. 마지막 날에야 겨우 유치신청서를 접수해 놓고도 회의론이 오히려 더 힘을 얻어갔다. 심지어 적당한 명분만 찾으면 신청을 철회하자는 정부 방침이 공식 확정되는 단계까지 갔다.
IOC 위원장을 지낸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스포츠는 정치와 전적으로 무관하다” 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스포츠가 그만큼 정치와 밀접한 관계임을 강조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올림픽을 국력 과시나 국가간 파워게임의 지렛대로 삼은 전례는 올림픽 역사 그 자체나 다름 없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부터 그랬다. 프랑스는 적국 독일이 참가한다는 이유로 선수를 아예 보내지 않았다. 1936년 베를린은 나치 독일의 선전장이었고, 1976년 몬트리올은 인종차별에 유화적이었던 뉴질랜드 때문에 아프리가 28개국이 비토했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른 1980년대 초반 모스크바올림픽과 LA올림픽을 미국과 구 소련이 서로 보이콧한 사건은 유명하다. 88서울올림픽은 북한과의 공동 개최가 무산됐다는 이유로 북한은 물론 쿠바도 불참했다.
올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과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반쪽 개최 조짐이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때문에 1년이나 늦게 열리는데도 해외 관람객은 입장조차 못한다. 최근엔 북한이 선수 보호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이때문에 도쿄를 남북 평화의 장으로 활용하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미국이 불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침해 때문이라지만 그 밑바닥엔 양국 갈등이 자리함을 누구나 안다. 과거 미소 대결 때처럼 미중이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면서 올림픽이 다시 한번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올림픽 경기는 국가 간 경쟁이 아니다. 어떠한 국가별 랭킹도 작성해서는 안된다’. 올림픽 헌장의 일부다. 하지만 참가국들은 매번 치열하게 메달 수로 나라를 줄세운다. 헌장에는 이런 말도 있다. ‘어떠한 정치 종교 인종 차별에 관한 시위 선전활동도 금지한다’. 하지만 정치는 올림픽과 늘 함께 해왔다. ‘승리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고 국가 대항이 아니라 개인의 영광이며 국력이나 정치와 무관하고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한다’는 올림픽 정신은 그저 말 뿐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