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친 자연철학은 실제로는 오류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물체의 운동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공을 던지면 그 공은 매끄러운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날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공이 우리 손을 떠나는 순간 작용하는 힘은 오직 아래로 작용하는 중력뿐이며 이로부터 뉴턴의 법칙을 통해 정확히 포물선 궤도를 도출할 수 있다. 물론 공이 그리는 포물선 궤적을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상에서 사물의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의 궤적은 포물선이 아닌 두 개의 순차적인 직선운동으로 보았다. 즉 처음에는 밀어주는 힘에 의해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최고점에 이르러 그 힘이 없어지면 곧바로 수직으로 낙하한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오류는 운동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하늘은 원운동이 일어나는 완전한 세계이며 땅은 직선운동만이 가능한 불완전한 세상이라는 세계관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 생각이 갈릴레이와 뉴턴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올바른 이론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떠오른다는 말은 은유적 표현일 뿐이다. 그러나 지동설이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분명 태양이 매일 떠오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로 틀릴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가 지동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지구와 태양의 운동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단지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점이 바뀐 것이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태양에서 흑점을 관찰했고 그 결과를 보고했으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망원경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흑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늘은 흠이 없는 완전한 세계라는 오랜 믿음이 흑점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망원경은 거짓을 조작하는 악마의 도구였다.

이 같은 상황들을 ‘관찰의 이론 적재성’이라 한다. 다른 관찰자가 같은 현상을 관찰하더라도 각자 자신이 믿는 이론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영어 속담에서도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To see is to believe)’라는 말이 있는데 비슷한 뜻으로 볼 수 있다. 이 속담들은 많은 일상 속에서 지혜의 말이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에는 자신 또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이론적 배경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To believe is to see)’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면서 지동설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지만 결국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고 죽음을 면하는 대신 가택연금을 당하며 생을 마쳤다. 이 일은 갈릴레이에게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동설에 대한 타당성 여부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지 않았다. 태양이 움직이든 지구가 움직이든 대중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인간의 행위가 거대한 지구환경마저 변화시킬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한 사실을 어떤 믿음과 이론적 배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류의 삶을 좌우할 수도 있다. 기후 위기의 경우 과학자들은 엄밀한 실험과 검증의 절차를 거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해 왔으며 특히 2018년에는 인천 송도에서 총회를 열고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앞으로 0.5도의 추가적인 기온 상승을 막지 못하면 우리 문명은 회복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경고하지만 아직 다수는 먼 미래의 일이거나 지구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보고서를 대하고 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인해 재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다수의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모두가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지순협대안대학 학장·온배움터 교수·‘시민의 물리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