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선거에는 후폭풍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민심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마련이다. 승자든 패자든,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어내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는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식적인 당위론이 제대로 먹혀 들지 않는 것 또한 현실 정치다. 뼈 깎는 반성이 뒤따라야 할 패자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모습을 보이거나, 승자는 승자대로 자만에 빠져 훗날을 그르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봐 왔다. 물론 선거는 승리하는 게 목표지만 정치는 승패의 연속이다. 당장의 승패와는 별개로 선거 이후 후폭풍을 잘 헤쳐나가는 것 또한 더없이 중요한 이유다.
국민의힘 압승으로 끝난 4·7 재보선도 만만찮은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선거 직후 이번 결과가 자신들이 잘 해서가 아니라 정부 여당이 못 해서라며 한껏 몸을 낮췄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민심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며 반성의 목소리와 함께 대대적인 쇄신을 다짐했다. 재보선에서 어느 쪽을 찍었든 대다수가 공감하는 부분이고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인 듯하다. 선거 이후 2주가량 지나면서 앞서 다짐했던 반성과 겸손 모드와는 딴 판으로 흐르며 두 당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마치 지난해 4·15 총선 이후의 모습과 흡사하다. 당시와 승패만 바뀌었을 뿐 여야 모두 어김없이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180석 압승을 거둔 민주당이 1년만에 급전직하한 이유는 굳이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지 싶다. 다만 당시의 압승이 치명적인 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총선 직후 낮은 모습을 보이자며 강조한 말이다. 그 때도 여권에서는 “우리가 마냥 잘해서, 예뻐서 뽑아준 것이 아니라 이 위기 상황에 ‘너희밖에 믿을 게 없다’는 절박한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현실은 달랐다. 다짐과는 달리 슈퍼여당의 힘에 도취해 시간이 갈수록 자만과 독단의 행태를 이어간 게 재보선 참패의 주요 원인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재보선 패배 이후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리며 일성으로 소통과 경청을 말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 또한 말 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민심 경청 투어까지 열며 적극 소통에 나서겠다는 말과는 달리 당 내부의 쓴 소리조차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성문을 쓴 2030 초선 의원들은 당내 일부 세력에게 융단폭격을 당했다. 새 지도부 꾸리기에 나선 당은 새 원내대표로 친문으로 꼽히는 윤호중 의원을 뽑았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재보선 패배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됐지만 여전히 민심보다는 당심이 우선이었다. 개혁 완수라는 당심의 대의명분에 당 쇄신이라는 민심은 묻혔으니 소통과 경청은 한낱 수사일 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승리를 거머쥔 국민의힘을 두고도 벌써부터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막을 내리자마자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며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에 ‘아사리판’ 운운하며 독설을 퍼붓자, 당에서는 그를 ‘뇌물 전과자’ ‘희대의 거간꾼’ 등으로 비난했다. 아무리 당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다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한솥밥을 먹으며 선거를 치른 이들이 맞나 싶다. 김종인이 사라진 비대위 또한 지리멸렬한 모습이다. 새 지도부 선출이나 야권 통합 등이 중요한 현안인 만큼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양상은 당의 미래보다는 제 한몸 살기 위한 각자도생의 이전투구가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아직도 부족한 점 투성이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당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가 향후 야권 재편과정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난을 한다는 분석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지적은 유효하다. “정당을 스스로 강화할 생각은 않고 외부세력에 의존해야 한다든지, 그것에 더해 당을 뒤흔들 생각만 한다든지, 정권을 되찾아 민생을 책임질 수권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당권에만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국민의힘 내부에 많다.” 김 전 위원장이 아무리 달갑지 않다 해도 지난 1년간 비대위를 이끈 그의 말 만큼은 당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재보선이 끝나며 사실상 대선전은 시작됐다. 재보선 이후 여야 모두 후폭풍을 겪고 있지만, 이 또한 거쳐야 할 일이긴 하다. 관건은 역시 내홍을 최소화하고 내부 전열을 제대로 가다듬는 데 달렸다. 지난 총선과 4·7 재보선 사이 민심이 얼마나 돌변할 수 있는지 여야 모두 똑똑히 목도했을 터이다. 대선까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대대적 쇄신 없이는 민심이 또 누구를 심판할지 모를 일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