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을 빼앗는 것이 비단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코로나19만이 아닐 것이다. 한 지역의 교통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운전문화 또한 그러하다.
최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 수는 1770명이다. 지난해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3083명)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숨쉬기조차 힘든 어르신들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힘겹게 걷고 있는 모습이나, 자기 얼굴을 뒤덮는 마스크를 쓴 어린아이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이토록 관심을 가지고 실천으로 옮긴 때가 또 있었느냐며 스스로 물어본다.
과거 우리나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사람보다 차가 먼저 갈 수 있도록 소통 위주의 교통정책을 펼쳤다. 그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자리 잡은 차량 중심의 교통문화는 많은 보행자가 사고를 당해도 둔감한 반응을 보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교통문화 덕분(?)에 경제 성장률은 OECD 회원국 내에서도 준수해졌지만, 교통안전 지수는 경제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즉,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8.1명으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많고, 특히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40%가 보행 사망자다. 이는 아직도 우리의 교통문화가 자동차 중심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운전자들이 보행자에게 얼마나 배려 운전을 하는지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 운전자 10명 중 1명 정도만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교통법에는 보행자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또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교통문화 지수 중 교통안전은 17개 시·도 중 부산이 상위였지만, 운전행태는 최하위로 나타났다.
이제는 이처럼 기울어진 교통문화의 저울추를 바로 잡아야 할 때다. 차량 중심이 아닌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
패러다임 전환의 성공사례로 스웨덴에서 1997년부터 지금까지 추진하고 있는 ‘비전 제로(Vision Zero)’라는 교통안전 정책이 있다. 정책 시행 당시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6.1명이었던 것이 2017년에 2.5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어릴 적부터 이루어지는 교통안전 교육의 영향이 크다. 취학 전부터 철저한 교육 등을 통해 교통안전이 몸에 밴 시민이 운전자로서, 보행자로서 지켜야 할 것을 스스로 실천하는 교통문화가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통문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내 간선도로 자동차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시속 30㎞로 하향함으로써 보행자를 보호하자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이 그것이다. 2017년 우리 지역인 영도에서 전국 최초로 시범 운영한 결과, 영도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는 37.5% 감소했다. 2019년 11월 부산 전역에 시행한 결과, 부산의 2020년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33.8%(24명) 감소해, 5030 정책의 효과성이 입증됐다. 부산의 이러한 5030정책의 효과성을 바탕으로 지난 17일부터는 전국에서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보행자 중심의 교통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었으나, 더 나아가 모든 도로에서 ‘보행자가 우선’인 교통문화 운동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부산경찰은 도로에서 보행자의 권리와 안전을 확보하고,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인식개선을 위해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이라는 교통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즉 ①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②횡단보도가 아닌 도로에서 ③우회전하려는 교차로에서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을 실천해 보행자를 배려하자는 것이다.
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는 순간 보행자가 되며 보행자는 내 가족과 이웃이 될 수도 있다.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횡단보도에서는 반드시 일단 멈추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므로 교통문화 개선 운동에 시민 모두의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코로나19 백신이 전 국민에게 미소를 되찾아 줄 희망이듯 ‘보행자 존중과 배려’의 교통문화라는 백신이 전국에 확산하여 보행자가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길 기대해 본다.
부산경찰청 교통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