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에서 계획은 있지만 수년째 진척되지 않는 ‘장기 표류 사업’이 무려 100개가 넘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본지와 부산시의회가 공동으로 ㈜도시와공간연구소에 의뢰해 장기 표류 사업 시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기에 앞서 도출한 결과다. 대상 사업에는 민간 제안 계획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이 부산시와 16개 구·군이 추진하다가 ‘공회전’만 하고 있는 경우여서 더욱 갑갑한 노릇이다. 지자체가 사업 계획을 내놓을 때마다 ‘장밋빛’에 그쳐선 안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게다가 각 사업의 규모도 많게는 수천 억 원의 재정투입이 필요한 대형이다. 시민의 시선이 싸늘할 수밖에 없다.

설문 조사 결과에서 시민의 이 같은 곱지않은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민의 관심은 ‘지역경제 회복’과 ‘고용 창출’을 위한 속도감 있는 추진에 집중돼 있는데, 사업 주체인 각 기관들은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되는 것도 아니고 안되는 것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민은 부산시가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 효과(45.0%)를 1위로 꼽았고, 시의 미래 비전 부합성(18.9%)을 그 다음으로 꼽았다. 시민 입장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적 파급 효과가 높은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장기 표류 사업이 급증한 이유로 ‘소극 행정(46.6%)’을 가장 많이 지적한 것도 새겨 들을 대목이다. 국비 확보 미흡이나 민간사업자와의 협의 난항으로 쉽게 포기해 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여기에 실무자들의 잦은 인사 이동으로 인한 연속성 부족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복지 예산 확대, 코로나19 재정 지출 증가 등으로 국비 지원을 받기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예산 부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세월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은 장기 표류 사업의 악영향으로 부산의 전체적 쇠퇴(21.1%), 사업 대상 지역의 침체(18.5%), 부산지역 내 균형발전 저해(18.5%) 등을 꼽았다. 한 마디로 ‘부산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걸림돌은 하루라도 빨리 걷어내는 것이 옳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조속히 전담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 시와 구·군이 겹치는 사업이 적지않은 만큼 TF에는 부산시뿐만 아니라 16개 구·군과 시의회까지 참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곧바로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옥석 가리기’부터 해야 한다. 지역경제 회생과 부산 미래비전 등을 위해 꼭 필요한지부터 가리고, 국비 확보가 수월한 사업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민자유치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절차 간소화,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문턱을 낮추는 것도 TF가 할 일이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박형준 시장이 하기에 따라서 임기 1년 3개월을 10년처럼 쓸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