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74) 씨는 실버 유튜브계의 1인자다. 가난 속에 태어나 집 나간 남편 대신 공사장이나 식당에서 온갖 허드렛일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손녀의 제안으로 유튜브를 시작, 패션잡지 ‘보그’에 소개되고 구글에 초대받는 등 세계적인 명사가 됐다. ‘치과 들렀다가 시장 갈 때 하는 메이크업’, ‘할머니들이 등산복만 입는 이유’ 같은 일상 소재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찰진 욕솜씨로 풀어내면 시청자들이 배꼽을 잡는다.
한국엔 할머니가 많다. 여성의 기대수명이 86.3세로 남성보다 여섯살이나 많기 때문이다. 100세 이상 노인 중 90%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다. 선진국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식당 간판에 할머니나 할매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맛집 축에 못 낄 정도다. ‘할머니’라는 단어는 외신에서 굳이 번역하지 않고 ‘Halmoni’ 그대로 쓰인다. ‘Halmoni’가 본격적으로 언급된 건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다. 가난과 전쟁, 모진 성차별을 겪은 지금의 할머니 세대는 지나온 시간의 신산함 때문인지 강인한 생활력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다. 그러나 인내와 달관에서 나오는 유머와 능청스러움도 그에 못지 않다.
74세의 귀엽고 위트 있는 한국 할머니가 또 일을 냈다. 배우 윤여정 씨 얘기다. 작년부터 주요 영화제를 휩쓸던 그녀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반세기 넘게 쌓인 연기 내공으로 마침내 세계 영화계 정상에 선 그녀이지만 그 성취를 능가하는 입담으로 스크린 안팎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대중예술계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노배우가 요즘 많다. 84세의 김영옥, 80세의 김혜자와 나문희, 72세의 김수미와 박원숙 씨는 드라마 영화를 넘어 예능까지 점령했다.
수많은 ‘윤여정 어록’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작년 선댄스영화제 시사회장에서 했던 말이다. “사람들이 자꾸 저보고 ‘레전드’라고 하는데 내가 그만큼 늙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윤 씨의 매력은 나이듦에 대한 쿨한 인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을 부정하지 않고, 늙었다고 주눅들지 않는다. 이혼녀 딱지를 붙이고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던 억척 어머니이지만 결코 여성임을 포기하지 않는 패셔니스타이자, 자기 분야에서 끝장을 보는 직업인이다. 큰 상을 받고도 울지 않아 더 좋았다. 이런 할머니에게 자녀나 손녀 세대가 보내는 최고의 찬사는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가 아닐까.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