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유럽은 일본 예술에 매료됐다. 1854년 미국 함대에 굴복한 도쿠카와 막부가 문호를 열고 본격적인 해외무역을 시작하면서다. 유럽인이 가장 열광한 건 가부키 배우나 명승지 등 세속적 주제를 담은 ‘우키요에(浮世繪) 목판화’였다. 인상파 화가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표현 대상의 대담한 강조와 생략, 화려한 색채와 경쾌한 필치 등등. 우키요에의 이색 화법이 기성관념을 깨는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조끼의 단추를 꿰듯이 간단히 정확한 몇 줄의 선으로 인물을 그려. 나도 그럴 수 있도록 해야 해.” 고흐의 반응은 특히 뜨거웠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각별히 언급할 정도였다. 그는 일본 선승 모습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프랑스어 사전에 ‘자포니슴(japonisme·일본주의)’이란 단어가 등재된 배경이다.
자포니슴을 대표하는 우키요에 작가는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다. 유럽인은 그의 연작 판화 ‘후지산 36경’ ‘후지산 100경’에 꽂혔다. 이들 작품은 후지산을 여러 각도로 조명한 풍경화이자 풍속화다. 그림에서 후지산은 구심점이긴 하나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후지산과 함께 살아가는 민중이다. 후지산은 해안가 바위 위에서 그물질하는 어부보다 약간 높이 솟아있거나(‘카이 지방의 카지카자와’), 우물 청소부와 대등하게 그려지기도(‘우물 청소’) 한다. 유럽인이 가장 주목한 ‘가나가와의 큰 파도’에 나오는 후지산은 아주 작고 낮다. 악마의 손가락인 듯 흰 갈퀴를 세우고 밀려드는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기 직전이다. 이 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카미유 클로델은 같은 형상의 조각을 제작했고, 드뷔시는 관현악곡 ‘바다’를 작곡했다. 일본이 ‘가나가와의 큰 파도’를 자국 미술사 최고 작가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 이유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최근 그런 일본의 자부심을 건드렸다. 바다에 원전 오염수를 쏟아붓는 사람들을 그려넣은 ‘가나가와의 큰 파도’ 패러디물을 트위터에 올리며 “호쿠사이가 살아 있다면 그 역시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매우 걱정했을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즉시 중국 정부에 항의하고 트위터 게시물 삭제를 요구했다.
‘가나가와의 큰 파도’의 큰 파도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은 근대 자국의 진취적 기상에 대한 상징으로 보겠지만, 다른 나라는 국제평화를 해치는 만행의 표상으로 읽을 수 있다. ‘대동아 공영’의 과거 제국주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는 얘기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