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인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은 ‘사랑의 꿈(Liebestraume)’ 아닐까 싶다. 근거가 될 만한 유의미한 통계가 있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인 ‘스포티파이’에서 4일 현재 재생 횟수 4268만 여 회로 리스트 곡 중 독보적 1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곡 탄생 배경에 당시 유럽 최고의 ‘아이돌(Idol) 스타’였던 리스트의 사랑과 연인의 이혼 문제가 얽혀 있다.
리스트가 ‘필생의 연인’ 카롤리네 추 비트켄슈타인 공작부인(1819~1887)을 만난 것은 1847년 2월이었다. 키예프에서 열린 공연에 거액의 후원금을 낸 이가 카롤리네였고, 둘은 곧장 연인이 됐다. 17살에 정략결혼을 한 카롤리네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 그녀를 만난 후 리스트는 12년 간 이어온 유럽 순회연주마저 멈췄다. 이듬해 바이마르에 정착한 리스트와 카롤리네는 동거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그녀가 정식 이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카롤리네가 교리에 따라 이혼을 하지 못하는 데 따른 괴로움과 그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담아 리스트가 만든 곡이 ‘사랑의 꿈’이다.
두 사람은 1861년 드디어 교황청의 ‘정략결혼 무효’ 확약을 받고 로마에서 결혼식을 올리려 했지만, 이마저 교황청의 변심으로 무산됐다. 리스트는 그 아픔에다 장녀의 죽음까지 겹치자 수도원에 들어가 성직자의 길을 걷는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끈’만은 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886년 리스트가 사망하자 카롤리네도 8개월 후 연인을 따라갔다.
널리 알려진 ‘세기의 이혼’ 사례는 많다. 하지만 ‘세기의 명곡’을 탄생케 하고, 위대한 음악가를 수도원으로 향하게 한 이 이혼 실패 스토리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사랑의 꿈’의 원래 제목인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기억하자. 그래도 변한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긴 하다. 이혼할 자유가 있는 이 시대가 이혼조차 마음대로 못했던 리스트와 카롤리네의 시대보다 더 나아진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빌 게이츠(66)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결혼 27년 만에 헤어지기로 했다는 또 한 번의 ‘세기의 이혼’ 소식을 듣고 드는 상념이다. 이혼은 그들의 자유지만,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속 숙부인(전도연 분)의 대사를 빌어 꼭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랑이 변하더이까?”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