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윌슨의 책 ‘잔혹’에 따르면 인류 역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잔혹 행위는 전쟁 상황에서 발생한다. 군대가 잔혹행위의 주요 주체라는 것이다. 군대의 폭력이 더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행위 대상의 ‘항거 불능성’ 때문이다. 윌슨은 특히 12~13세기 몽골기병에게 주목한다. 당시 몽골군의 원칙은 간결했다. “항복이냐, 죽음이냐? 택하라”는 것. 저항을 택한 국가에게 돌아간 것은 처참한 광경 뿐이었다. 몽골군은 특히 생포한 왕족과 귀족을 쇠 말뚝에 꽂아 길 양 옆으로 전시하고 피를 말려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공포심의 극대화’다. “저항하면 이렇게 되리라”는 협박이다.
이런 구 시대적 잔혹 행위가 21세기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 충격을 준다. 11일로 군부 쿠데타 발생 100일째를 맞은 미얀마에서 쿠데타를 반대하다 끌려간 40대 저항 시인이 장기가 적출된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지만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구절을 쓴 시인 케 티(45)가 지난 8일 연행됐다가 하루 만에 내부 장기가 모두 제거된 채 가족에게 인계됐다. 군부의 의도는 역시 공포감이다.
하지만 저항의 불길을 꺼트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쿠데타 이후 지난 7일까지 숨진 시민만 774명이다. 유아와 5세 7세 어린이를 포함한 아동도 50여 명 숨졌다. 이미 1980년 ‘서울의 봄’을 거쳐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공식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경제는 무너지고 민생고도 극심해졌다. 그럼에도 저항 의지는 강해져만 간다. 지난달 중순 반군부를 기치로 출범한 국민통합정부(NUG)는 최근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했고, 소수민족 무장 조직들과 결합한 연방군 결성을 준비 중이다.
총 칼 앞에 선 공포감 속에서 국제사회로부터 무력감을 느낄 때, 생의 마지막까지 저항한 시인의 죽음은 기약없는 ‘미얀마의 봄’을 앞당길 한 줄기 빛이다. 시인 케 티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영웅도, 순교자도, 약자도, 바보도 되고 싶지 않다. 불의를 지지하고 싶지 않다. 삶이 단 1분만 남았다면 그 1분에도 떳떳해지고 싶다”.
여기에 4·19혁명 직후 쓴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은’의 구절을 덧붙여본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미얀마 시민을 위한 ‘응원가’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