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9대 총선을 7일 앞두고 정부가 여야 대표 정당 복지 공약 실현을 위해 필요한 예산 추정치를 내놓자 정치권이 술렁거렸다. 당시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복지 공약 266개를 모두 집행하려면 기존 복지 예산 92조6000억 원 외에도 5년간 최소 268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밝힌 것. 정치권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 재정건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해 정부 예산이 325조4000억 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기획재정부 발표를 두고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어긴 선거법 위반이란 유권해석을 내렸다. 선거 결과를 왜곡하는 것으로 봤다. 정부가 정치권의 복지 공약에 드는 돈을 공개한 점도, 선관위가 신속하게 대응한 점도 이례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논란이 ‘공약예산 추계제도’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 그러니 ‘재원 조달 계획이 없는 복지 공약은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자천타천 대권 주자들이 앞다퉈 공약을 내놓고 있다. 현금 공세가 특징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사회초년생에게 1억 원을 지원하는 ‘미래씨앗통장 제도’와 국민능력개발지원금 1인당 2000만 원을 제시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군 전역자와 사회복무를 마친 청년들에게 사회출발자금 3000만 원 지급에 더해 청년주거급여 대폭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을 1인당 연간 1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확대하겠단다. 앞서 이 지사는 대학을 가지 않는 청년에게 세계 여행비를 1000만 원씩 주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른바 여권의 ‘빅3’ 뿐만 아니다. 개인 데이터가 활용될 때 일정 소득을 주는 참여소득(이광재 민주당 의원), 20세 청년에게 6000만 원가량의 현금이나 주택을 제공하는 국민기본자산제(김두관 민주당 의원), 연수익 7% 이상의 국민행복적립계좌 도입(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장 출마 유세에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억 원대 결혼·출산 지원’을 강조했던 사례로 미뤄볼 때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의 공약도 만만찮을 듯하다.
이런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선 세금이 필요하다. 그 세금이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다는 점이 중요하다. 네덜란드나 호주가 선거 공약이 경제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제도를 두는 이유다. 입만 열면 선진국 사례를 들먹이는 정치권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꿈뻑거리니 더욱 아쉽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