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부산이 케이블카 논란으로 후끈하다. ㈜부산블루코스트가 지난달 해운대~이기대 해상관광케이블카 재추진 사업 제안서를 부산시에 제출하면서 촉발됐다. 2016년 1차 제안이 반려된 후 5년만이다. 이 케이블카의 길이는 4.2㎞로 목포해상케이블카(3.2㎞)보다 긴 국내 최장 규모다. 대체로 관광업계와 부산 남구 주민은 찬성 여론이 강하고, 환경단체와 수영구 주민은 반대 입장이다. 해운대구는 찬반이 팽팽하다. 반려 사유였던 교통난, 사생활 침해, 자연환경 훼손 등이 반대 측의 여전한 논거다.
최종 결과와는 별개로 이번 논란을 보면서 생긴 관심사가 두 가지다. 하나는 ‘도시의 진화’에 대한 고찰이고, 또 하나는 ‘부산형 라이프’에 대한 기대감이다.
도시는 진화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홍익대 건축대학 유현준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유 교수는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에서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비슷한 단계로 도시도 진화한다”고 봤다. 그는 진화 단계가 가장 빠른 도시가 시대를 이끌었다고 설파했다. 생명체의 순환계와 같은 물의 원활한 공급을 달성한 고대 로마, 신경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교통망이 방사형 도로망을 통해 갖춰진 19세기 파리가 대표적이다. 또 뉴욕은 척추신경계에 해당하는 전화 전신망을 가장 선진적으로 갖추고 금융중심지로서 20세기를 이끈 도시다.
‘도시의 진화’ 측면에서 필자가 최근 주목하는 곳은 싱가포르다. 이곳의 멈추지 않는 진화는 실로 경이로울 지경이다. 면적이래야 부산(765.82㎢)보다 작은 647㎢에 불과하지만, 싱가포르는 이미 20세기 동남아 물류와 금융·관광의 허브(Hub)가 됐다. 항만은 물류(物流), 관광은 인류(人流)라는 신념 아래 추진한 전략이 통했다. 특히 1967년 영국으로부터 뒤늦게 반환 받은 센토사섬에 위락 관광단지를 짓기로 하고 해상케이블카까지 만들어 20세기 후반 싱가포르 관광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하늘길’로 바다를 가로질러 섬과 섬을 오가게 한 아이디어가 관광객에게 주효했다. 싱가포르의 진화는 21세기 들어 더욱 눈부시다. ‘마리나베이샌즈’가 대표적이다. 호텔과 카지노, 컨벤션센터와 쇼핑센터에다 200m 높이 건물 3개의 옥상을 연결한 수영장까지 갖춘 복합리조트다.
리콴유 시대의 철칙이던 ‘카지노 불허’방침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민간투자자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짓기로 결정한 해가 2004년이었는데, 불과 6년 만에 세계 최대 ‘하늘 수영장’을 갖춘 기상천외한 건축물이 섰다. 기존 금융·업무중심지였던 마리나베이 해변에서 바라보면 바닷물밖에 없던 곳에 우뚝 솟은 이 리조트는 등장과 동시에 싱가포르의 상징이 됐다. 매일 오후 8시 레이저쇼까지 펼쳐져 기존 중심 해변이었던 마리나베이에도 관광객이 몰렸다. 효과는 상당했다. 관광객과 일자리가 늘면서 인구도 급증했다. 2007년 싱가포르와 부산의 인구는 440만 명과 361만 명이었지만, 올해 5월 현재는 590만 명과 336만 명으로 250만 명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그렇다면 부산해상케이블카는 과연 자연을 지혜롭게 이용한 도시의 진화 사례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파괴와 훼손 뿐인 ‘퇴보’로 봐야 하는가?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찬반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그런 가운데도 수정된 사업안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단순 관광시설에 그치지 않고, 교통시설을 겸하겠다는 발상이다. 시민이 아침 저녁 출퇴근용으로 대폭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나른한 월요일 아침 출근길, 해상 150m에 뜬 채로 찬란한 일출을 보며 일터로 가거나, 낙조를 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집으로 향하는 일상. 이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야 말로 서울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부산형 라이프’가 아닐까. 도시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시민의 행복으로 연결돼야 한다. 비록 케이블카라는 아이템은 새로울 것 없지만, 그것이 유발할 ‘부산형 라이프’가 창조적이고 시민의 행복을 이끌 수 있다면 훗날 ‘부산의 진화’로 평가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부산시가 이 사안을 12개 장기표류 사업 중 유일하게 ‘갈등 사업’으로 분류하고 공론화에 부치기로 한 것에 주목한다. 시민의 숙의를 거치는 공론화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약점이 있지만, 결정에 대한 반발이 작다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지닌 방안이다. 다만 이 제도의 약점인 리더의 책임회피 및 시간 낭비 논란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적어도 공론화 절차에 대한 조속한 착수라도 이끄는 것이 책임행정의 마땅한 자세다. 이후 찬반 양측의 논리를 설득해 내는 것은 당사자들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다만, 공론화에 착수할 경우 모든 참여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서두에 얘기한 대로 ‘도시의 진화’와 ‘부산형 라이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는 점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