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老鋪)라는 단어는 전통적인 우리말은 아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일본어로는 ‘시니세’라고 한다. 하지만 언중이 자주 사용하다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라는 뜻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들어 노포가 가진 사회 문화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노포 육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30년 이상 된 도소매업과 음식점을 대상으로 ‘백년가게’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사업 초기 백년가게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 및 선정 대상에 음식점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노포 음식점이 가져야할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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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프라이 하나에도 수십 년의 전통이 녹아있다. |
단순히 나이만 먹었다고 노포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점도 나잇값을 못하면 꼰대가 된다. 그럼 과연 노포 음식점의 나잇값은 뭘까?
음식은 당연히 첫 번째 조건이다. 설령 자기 건물에서 장사한다 치더라도 음식이 후진데 그 긴 세월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 두 번째는 사회적 가치다. 존재 자체로 당대 한국음식의 상징이 되어야한다. 하다못해 지역의 서사 정도는 품고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노포를 공공재의 관점에서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세 번째는 사람이다. 노포에는 주인장이든 직원이든 수십 년 동안 그 음식을 다뤄 온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장인이나 전문가가 없는 노포는 ‘앙꼬 빠진 찐빵’이나 다름없다. 창업 80년이 넘은 맥도날드를 노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트렌드를 좇기 보다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는 것이 노포답다.
음식 서사 사람이라는 세 가지 조건만 갖추면 충분히 노포의 자격을 가지며 사회적으로 존경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얹는다. 바로 노포만의 방식 혹은 노포만의 재미다.
노포에는 주인이 판을 깔고 수십 년 단골들이 만들어 온 그 집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오래된 음식점을 자주 다니다 보면 저절로 발견할 수 있는 재미다. 더러 새롭게 창업하는 음식점에서 이런 방식을 모방하기도 한다. 흥미롭긴 하지만 아무래도 노포의 존재감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원조가 가지는 힘이다. 노포의 단골이 되는 진짜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 중구 다동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북어국집으로 꼽히는 ‘무교동북어국집’이 있다. 1974년부터 현재의 장소에서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무교동북어국집’에서는 계란프라이 하나에 500원을 받는다. 초란을 사용해 완벽한 반숙 프라이를 구현한다. 단골들은 “계란프라이 하나 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알 하나”라고 시크하게 주문한다. 단골들만 아는 은어다. 이걸로 끝나면 큰 재미 없다.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다. 이 반숙 프라이를 그냥 먹지 않는다. ‘무교동북어국집’에서는 기본 찬으로 물기 뺀 새우젓에 파 참기름 참깨를 버무린 게 나온다. 이 새우젓을 적당히 계란프라이에 올려서 전병처럼 말아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맛있는 계란프라이다.
주인이 판을 깔고 수십 년 단골들이 함께 만들어온 전통이다. ‘무교동북어국집’에서 이 재미를 놓치면, 북어국 반만 먹은 거나 다름없다. 이 재미야말로 진정한 노포의 조건이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