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항 신항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정과제인 해운재건의 성과를 점검하고, 해운산업 리더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전략을 함께 발표했다.

지난 2018년 3월 문 대통령은 부산항을 방문해 해운산업 재건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지난해 4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시작이자 상징인 제1호 초대형 컨테이너선 ‘HMM 알헤시라스호’의 명명식에 참석한 데 이어 이날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중 마지막 선박인 ‘HMM 한울호’의 출항식에도 참석한 것이다.

그는 2017년 한진해운 파산으로 위기를 맞은 해운업 재건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이날 정부는 컨테이너 선박의 ‘대형화’와 함께 항만의 ‘친환경 전환 가속화’와 ‘디지털화’를 해운산업 도약의 기회로 삼고 2030년까지 150만TEU(1TEU=6ｍ짜리 1개) 이상 컨테이너 선복량을 확보해 해운 매출액을 70조 원 이상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해운업 재건에 대한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면 한국 해운업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된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해운업계는 환영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며 아우성친다. 최근 공정위원회가 한국-동남아항로 컨테이너 해상운송서비스 업체들에게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중소규모의 선사인 국적선사 11개 업체에 대해 5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각 업체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동남아 항로를 서비스하는 해외 선사에 대한 2300억 원의 과징금을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부과된다. 앞서 목재수입업계는 2018년 국내 선사들이 동남아 항로 운임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고 공정위에 신고한 이후 선사와의 대화를 통해 공정위 신고를 취소했다. 그런데도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이 나온 것이다.

공정위의 심사대로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경영체질이 허약한 중소해운사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해운·조선산업 침체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다 최근 수출호황과 더불어 해상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선박이 부족해지고 해상운임이 상승해 겨우 실적이 개선된 해운업계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공정위는 외항 정기선 해상운송업의 ‘운임 공동행위’를 가격 담합이라고 보고 있지만 해운법에는 해운업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만약 공동행위가 전면 금지된다면 해운시장은 국내외적으로 독점 또는 과점시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운업계는 공정위가 이를 가격 담합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선사간 출혈 경쟁으로 운임은 오히려 떨어졌고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성공한 적이 없어 부당행위로 거둔 이익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판단은 그동안 공동행위를 장려한 정부의 정책과 배치된다. 해양수산부는 국적선사간 상생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7년 국적 컨테이너선사 14곳이 참여한 한국해운연합(KSP)을 결성해 항로 구조조정을 적극 도왔다. 지난해에도 동남아항로 국적 컨테이너선사를 중심으로 해운동맹 ‘K-얼라이언스’를 추진했다. 이 정책도 선박철수나 항로 통폐합이 운임을 올리거나, 또는 운임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진행된 만큼 공정위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이 같은 정부 부처 간 엇박자는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책 불신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야기된 데는 제도적 허점이 있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해운법에서 선사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도 경쟁법 규제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의 조치가 현실화되면 과징금을 내기 위해 국적선사들이 선박 자산을 매각하고 경영 기반이 흔들리면서 업계에 실업자들이 대거 나올 수 있다. 나아가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환경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 기항이 줄면 우리나라의 수출입화물에 대한 해상 운송비가 증가하고 수출입 화주의 적기 수송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과징금 부과 대상에 국적선사뿐만 아니라 외국 선사가 포함된 만큼 해당국으로부터 보복조치 및 해당국 정부와의 외교분쟁 발생 가능성도 크다. 현재 중국, 일본 선사들이 한국 정부의 조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는 한국-일본, 한국-중국 노선의 운임 담합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공정위 조사로 해운업계는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번 일이 우리 해운산업을 위축시키는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조속히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편집국 부국장 e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