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안 되는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인생사만은 아니어서 나라의 운명, 소위 국운이 쇠락의 길로만 치닫는 경우도 있다.
왕조 말기에서 근대 초입까지 호되게 ‘망쪼’를 경험한 우리 한국인은 그런 상태를 너무도 잘 안다. 한창 진행 중인 도쿄 올림픽을 보면서 뭘 해도 잘 안 되는 한 국가를 지켜본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어내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신호탄으로 올림픽을 유치한 일본이 설마 코로나19 대유행을 예상했겠는가. 그토록 조잡하고 참담한 개막식 행사가 될지 알았겠는가. 폭염과 태풍과 시설미비로 온갖 고충이 생겨나고 관중도 관광객도 없는 엄청난 적자 행사가 펼쳐질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세계 최일류 국가로 온갖 영화를 누렸던 1980~90년대를 보내고 2000년대 접어들어 일본은 뭘 해도 잘 안 되는 세월을 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찾은 심리적 위안거리는 혐한이다.
한국인을 향해 ‘짐승에게 어찌 사람대접을 해주나’ 식의 인터넷 댓글은 일상적이다. 그게 소위 넷우익들만의 패악질이 아니어서 신망 있는 신문 방송들도 쉼 없이 한국 비난을 쏟아낸다. 그들에게는 한국 비난, 한국인 멸시가 국민 스포츠이며 오락이 된 듯하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속으로 되뇌인다. ‘잘 해 보슈!’.
과거의 한국정부는 일본에 대해 본능적 공포심을 느꼈던 것 같다. 일본이 강대국 횡포를 부릴 때마다 굴신의 자세를 보였던 역대 대통령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일본이 맘 먹고 손을 쓰면 크게 낭패를 보게 된다는 두려움이 정부관료나 정치인 모두에게 미만했다.
우리가 일본 정부에 처음으로 맞서본 게 2년 전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서겠다고 대통령이 선언하며 정면으로 맞대응했는데, 어라, 한국은 어떠한 곤경에도 처하지 않았다.
우리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깊은 유착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미국을 움직여 한국 대통령 무릎을 꿇릴 줄 알았더니 웬걸, 속수무책으로 당혹한 일본 총리의 표정만 보였다. 지금도 기억 난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일본 측 고위관료가 방송에서 하던 말. “우리에게 두 자리 수의 계책이 있다”던가. 한국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던 그 수십 가지 계획이라는 걸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보고 싶다.‘ 니뽄 파이팅!’
나는 지금 기고만장한 것도 일본의 저력에 무지한 것도 아니다. 다만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변환곡선을 의식할 따름이다.
디지털 문명으로 대격변이 일어난 지난 몇 십년간 일본은 그들의 과거 영화에만 매몰됐다. 장인정신, 기술 세분화, 평생고용 등 세계가 칭송해 마지 않던 일본식 아날로그 시스템이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그들은 안주했고 이제 되물릴 도리도 없어 보인다.
아날로그 일본이 갈라파고스 섬이 되고 있는 동안에 그 틈을 비집고 일어선 국가가 한국뿐인가. 아니다. 한국보다 훨씬 더 크고 장대하게 성장한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실상 한국의 경제 성장은 중국 성장에 편승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흔히 4차산업이라 부르는 신성장 분야에서 미국의 적수이자 유럽을 제칠 수 있는 국가는 오직 중국뿐이다. 그러니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기생관광을 펼쳐서라도 일본의 더러운 돈을 줍던 한국이 이제는 그 나라와 대결적 관계를 가질수록 유리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일제의 대체품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신장세는 확고하다. 그러나 과연 중국과도 그러한가?
도광양회. 개혁개방을 출발시킨 덩샤오핑이 내렸다는 유명한 교시다. 실력이 무르익을 때까지 미국에 100년 동안은 고개 숙이라 했던 그 교시를 어기고 시진핑 체제에 들어서 성급한 패권적 처신을 시작했다.
우리 역시 두고 못 볼 일을 수없이 겪고 있다. 우리 대통령 방중에 모욕적 대접을 하는 중국정부라든지 ‘속국’이라 비하하기를 일삼는 일반 중국인들의 언행은 참으로 괘씸하기만 하다. 그러나 속으로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한국의 도광양회. 지금은 그럴 때다. 일본과는 어떤 분야에서든 대결적 관계에서 이득이 찾아지는 형세지만 중국과는 거의 모든 면에서 협력적 관계에서 국가 이익이 생겨난다.
중국인 입장으로 보면 한국은 참으로 얄밉도록 영리한 나라일 것이다. 그러니 일반 한국인이 혐중의 감정으로 온갖 심한 말을 쏟아낸다 할지라도 정부 차원에서는 일정 정도 굴신의 태도로 미중 간 균형외교를 하는 점을 양해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로 엄청난 난관을 겪고 있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건만 한국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간은 투자처로도 시장으로서도 중국은 필요한 상대국이다. 언젠가 북한과 통합하고 북간도 고토를 회복할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