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자 프로축구팀인 WFC 로시얀카는 리그 우승까지 한 강팀이지만 남자 축구에 가려 적자를 면치 못했다. 흥행을 위해 짜낸 고육지책이 비키니 유니폼 이벤트였다. 덕분에 경기장이 한동안 만원 사례였다는 후문이 있지만 스포츠의 성상품화 논란 때마다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1990년대 국내에서도 한국여자농구연맹이 여자 프로농구 선수들에게 몸에 딱 붙는 쫄쫄이를 입혔다가 호된 비난을 받았다. 일부 배구 구단에선 여자 선수용으로 반바지 대신 치마바지를 도입했지만 몇년만에 슬그머니 철회한 일도 있다. 스포츠를 스포츠로 바라보지 않는 남성적 시선이 낳은 해프닝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네덜란드 우덴이라는 지방의 아마추어 여성 축구클럽인 드 락트는 반바지가 아닌 미니스커트로 유니폼 변경을 추진했다. 정해진 규정에 반한다며 도입을 반대한 건 오히려 국제축구연맹(FIFA)과 네덜란드축구협회 쪽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여자 축구의 인기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이유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치마 안에 속바지를 입는 조건으로 승인됐다. 일상에서의 성평등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받는 북유럽 국가였기에 가능한 상황이었을지 모른다.
개막 11일째 접어든 2020 도쿄올림픽도 여성선수 경기복을 둘러싼 논란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측은 개막 초기부터 “선수들의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이번 대회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육상 트랙이나 비치발리볼 모래 위에 선 여자 선수의 하체 또는 상체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화면이 여전히 전파를 타고 있다. 독일의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이런 관행에 저항해 다리가 드러나는 수영복형 대신 발목까지 덮는 레깅스형을 입고 출전해 화제가 됐다. 경기력을 위해 수영복형 체조복을 고집하는 선수들조차 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같다. “옷 말고 시합에 집중해달라”는 것이다.
한때는 민망한 복장이었던 레깅스를 요즘엔 운동복으로 뿐만 아니라 일상복으로도 많이 입는다.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 자신이나 그걸 접하는 외부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덕분일 것이다. 스포츠 유니폼 규정은 선수들의 활동력을 높이고 반칙 소지를 차단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특정 스타일을 강요하거나 이를 눈요깃감으로 소비하려는 행태가 유독 여성 선수복에 많다. 때로는 유니폼의 선정성 시비를 유니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음흉한 눈길이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