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석 171석 더불어민주당의 폭주에 재시동이 걸렸다. 4·7 재보궐선거 완패 이후 잠깐 고개를 숙이는 듯하더니, 또다시 수적 우위에서 나오는 오만한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넘겨주기에 앞서 핵심 지지층의 관심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 시작하더니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과 ‘사립학교법개정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법안들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이 야당에 상임위원장을 돌려주는 결단을 한 것은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 때문인데 행동은 여전히 독선적이다.
친문 핵심지지층을 등에 업은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밀어붙이고, 표를 의식한 유력 대선주자들은 ‘눈을 감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진보언론에서조차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는 언론중재법은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누더기법안으로 개악되면서 ‘언론징벌법’ ‘언론재갈법’ ‘언론질식법’으로까지 불린다. 상임위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상 여당의원인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을 야당 몫 안건조정소위원으로 배정해 소위를 무력화시켰다. 법안의 본회의 처리와는 별개로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여당의 유력 대권주자들은 입을 닫고 있다. 언론과 유관단체, 정당, 학계,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국제언론단체에서조차 모두가 반대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오히려 지지했다.
지난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손해배상 규모) 5배는 약하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내면 언론사를 망하게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27일에는 페이스북에 “국민이 원하는 언론개혁의 첫발을 뗄 때”라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는 “언론에 의한 피해를 이대로 둘 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열린민주당TV에 출연해서는 “현직기자들을 위해서도 그것(언론중재법 통과)이 바람직한 길”이라며 “현직기자였다면 이런 언론중재법을 환영하고, 자청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과연 ‘진심일까’라는 생각까지 드는 발언들이다. 강성 친문지지층의 표를 의식한 발언은 아닐까.
김두관 의원은 언론중재법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가 이튿날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면서 사과와 함께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기도 했다. 실제로 강성지지자들은 언론중재법 처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여당의원들에게 ‘언론 10적’이라고 비난하며 문자폭탄을 독려하기도 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쇠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박용진 의원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의 모든 대선주자들이 찬성했는데, 이들의 언론관에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이득을 보는 쪽은 권력층이나 힘있는 사람 또는 힘있는 기관일 것이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야당은 무턱대고 반대할 게 아니라, 평생 야당만 할 생각인가요”라고 말한 데서 속내가 잘 드러나고 있다.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취지가 ‘가짜’가 아니라면 언론중재법 통과와 여당과 야당의 이해 관계에 무슨 차별이 있다는 말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결국 권력비리를 보호하겠다는 속내를 무심결에 드러낸 것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비판보도 차단으로 생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고,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최고권력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하고, 미래 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은 동조하고 있다. 언론의 권력 비판이 당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일이고, 내년부터는 바로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까.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다. 언론재갈법을 찬성하는 이들이 대통령이 되면 만들려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언론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운 전체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일까. 온 국민을 생각하기보다는 핵심 지지층만 보고 내달리겠다는 선언일까.
지금 전 국민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영업 중단과 폐업의 갈림길에서 절벽으로 내몰리고,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 전월세난까지 가중되는 총체적 난국 상황이다. 과연 이 시점이 민생과는 거리가 먼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여 국론을 분열시킬 정도로 한가한 상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승부를 걸듯이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많이 불편했구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선임기자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