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토르나토레(1956~) 감독의 어린 시절 회고담이니, 아마 시·공간적 배경은 1960년대, 이탈리아 시칠리아일 게다. 영화 ‘시네마 천국’ 이야기다. 주인공 토토의 생활 중심지는 마을 소극장이다. 토토는 그곳에서 영사기사 알프레도로부터 인생을 배운다. “불꽃은 결국 재만 남기는 법. 아무리 위대한 사랑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기 마련이지.” “영화는 현실이 아니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단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고루 가르쳐 주는 살아있는 강의다. 소극장은 마을 주민이 소식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매개다. 삶과 영화가 동전의 양면처럼 일상 속에서 어우러진다.
삶과 영화의 밀접성은 영화의 본질적 특성이다. 그림의 경우 한 번에 하나의 대상만 그릴 수 있지만, ‘연속 사진’인 영화는 카메라만 있으면 아무리 많은 대상도 있는 그대로 다 담을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에는 그림처럼 희소성이 주는 원본의 신비감이 없다. 무한한 표현의 자유와 함께 대량 생산해 다수가 즐길 수 있는 민주성이 보장돼 있는 예술 장르가 영화다. 발터 베냐민은 사진과 영화의 출현이 몰고 온 예술의 이런 변화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신비감)의 붕괴”라고 했다. 예술 표현에서 허위를 제거하고 생생한 삶의 속살을 드러낼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런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가 저절로 구현되는 건 아니다. 그건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려는 치열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산국제영화제(비프) 집행위원회가 내달 6~15일 열리는 제26회 비프에 신설한 ‘동네방네비프’에서 그런 의지를 본다. 영화의전당 등 메인 행사장을 벗어나 원도심 산복도로를 비롯한 14개 구군의 마을에서도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비프 집행위는 여기에 ‘중심성과 탈중심성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붙였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중심과 탈중심의 시각이 고루 담겨야 한다. 자크 데리다가 주창한 탈중심주의는 인간에 대한 시각을 서양·남성 등 중심에서 동양·여성 등 탈중심으로 이동하려는 현대 문명의 최신·최고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탈중심의 방점은 수도권 일극주의의 배격에 찍혀 있다. 수도권 기능을 지방으로 분산해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네방네비프는 그 탈중심(균형발전)의 대업을 지역에서 먼저 실천하려는 선구적 노력으로 읽힌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