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경차 SUV인 캐스퍼의 질주가 심상찮다. 지난 23일 기준으로 2만5000여대가 사전계약되면서 현대자동차 내연기관차 중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올해 생산 물량이 사실상 완판이라고 한다. 현대차로부터 위탁 받아 광주에서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관계자들조차 예상 밖이란 반응이다. 캐스퍼의 쾌속 출발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첫 결실이라는 점이다. MZ 세대를 겨냥한 100% 온라인 판매나 디자인 등 높은 상품성 외에, 일부의 예상보다 높긴 했으나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 돌풍에 영향을 미쳤으리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요컨대 가성비가 좋다는 이야기다.
주지하듯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국내 첫 노사 상생 모델이다. 고용 절벽에 맞닥뜨린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사는 물론 민정이 힘을 합치는 사업이다. 기업은 지역에 투자를 하고, 노동자는 동종업계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하는 상생 구조다.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도 주거 보육 등 복지에 다양한 지원을 한다. 말이야 쉽고 첫 결과물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그간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2014년 당시 광주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이후 결실을 이루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린 게 그 증좌다. 낮은 임금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과, 현대차의 투자 여부 등 지난했던 협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노사가 한발씩 양보한 상생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캐스퍼의 흥행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광주시가 7년 전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내건 것은 지역 상황이 너무도 절박해서였다. 기업은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곳에 투자를 외면했고, 청년들은 고용 절벽에 내몰리며 지역 경제는 침체일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목한 곳이 폭스바겐 공장이 있던 독일 볼프스부르크였다. 독일 통일 이후 실업률은 18%까지 치솟았고,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동유럽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했다. 볼프스부르크 공장 또한 인건비가 낮은 해외공장으로 생산량이 빠져나가며 위기가 찾아왔다. 고심 끝에 볼프스부르크와 폭스바겐이 선택한 것은 일자리 나누기였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 대신 별도의 공장을 세워 5000명을 고용하되 임금은 기존 노동자보다 20% 낮게 지급하는 ‘AUTO 5000’ 프로젝트에 합의한 것이다.
독일 폭스바겐 모델을 벤치마킹했다고 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7년의 힘든 세월을 딛고 첫 결실을 이뤄냄으로써 위기에 빠진 지역 경제 회생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순항하면서 정부 또한 적극 나섰다. 지난해 6월 광주형을 시작으로 부산형(전기차 부품), 경남 밀양형(뿌리산업), 전북 군산형(전기차), 강원 횡성형(전기차) 등 5곳이 선정돼 상생 일자리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들 5곳에서는 향후 1조 8500억 원의 투자와 함께 3900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다.
그런 만큼 부산형 상생 일자리 사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코렌스EM과 20여개 협력사가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 26만여 ㎡에 미래차 부품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전기차 구동 유닛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코렌스EM이 이 사업에 동참하기까지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한때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투자 제안을 받고 중국 진출을 검토했지만, 협력업체와 함께 부산에 동반 투자하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 특히 부산형 사업은 코렌스EM과 협력업체가 협업해 동반성장하는 ‘노사 및 원·하청 기술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코렌스EM은 내년 1월부터 제품 양산에 나설 계획이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총 투자 예정액 3526억 원 중 현재까지 투자액은 1090억 원이다. 사업기간이 2030년까지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시간이 있긴 하지만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광주와 부산 등 5개 지역의 상생 일자리 사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향점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곳곳에 난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큰 복병은 노사가 합의한 적정임금 수준의 지속 여부다. 광주형 사업의 경우 대의를 위해 일정 기간 노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씩 양보하며 협약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협약 기간이 지난 이후 임금 인상 문제가 불거지고 협력관계가 삐걱거린다면 사업의 근본이 흔들릴 우려가 상존하는 것이다. 비단 임금 문제 뿐 아니라 투자를 약속한 기업이 책임 경영을 저버릴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 올 수 있다.
결국 이들 사업 성공의 핵심은 말 그대로 상생 정신을 얼마나 잘 지켜나가느냐에 있다. 노와 사, 기업과 지역, 원청과 하청 모두가 동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자는 본래의 취지를 잊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전국 5개 상생 일자리 사업이 또 한번의 실험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