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있었다.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플래카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효자를 자청한 이들이 올 추석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제례(祭禮)의 시간은 저 환한 달빛처럼 흐뭇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 간의 불공평한 노력 봉사에 시간을 쏟아부은 후 허둥지둥 돌아가는 자식들에게는 갑갑증과 파열음이 꿈틀댈 수도 있을 것이다. 추석이 지난 지 한달이 다 됐지만 명절 갈등이 여진처럼 이어지는 가정도 많다. 그래서 필자는 추석과 제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필자는 올 추석에도 차례(茶禮)가 아닌 기제사처럼 예를 올렸다. 제물(祭物)이 적으면 정성이 부족한 것 같아서이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조율이시(棗栗梨枾)니 홍동백서(紅東白西) 등의 이유도 모르면서 그득한 제사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 이런 전통의 근거는 무엇일까?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감’과 ‘배’의 순서를 두고 ‘감이 먼저다’, ‘배가 먼저다’ 옥신각신하다가 ‘감놔라 배놔라’라는 속담이 생겼다. 조율이시는 가을에 수확하는 과일의 색깔을 음양에 맞춘 순서라고 한다. 그런데 ‘조율시이(棗栗枾梨)’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대추는 씨가 하나여서 임금, 밤은 알갱이가 세 개로 삼정승, 감은 씨가 6개로 육정승, 배는 씨가 8개로 8도 관찰사를 뜻하니 서열상 감이 배보다 앞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흔히 제사 규칙의 근거로 삼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과일을 과(果)로만 했을 뿐 조율이시니 홍동백서와 같은 진설법(陳設法)은 없다. 생선도 어(魚)로만 되어 있다. 어동육서(魚東肉西)라는 말도 없다. 송자대전(宋子大全)에 의하면 중국을 기준으로 동쪽이 바다라 생선을, 서쪽이 육지라 고기를 놓았다는 설명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과학적·합리적 근거는 없다.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상다리가 휘어지는 제사상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조선 시대의 제사는 사대부만의 특권이었다. 평민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 초기에 5% 미만이었던 양반이 후기에 와서는 70%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양반들이 자식을 많이 낳은 게 아니라, 매관매직(賣官賣職)이 횡행(橫行)하여 평민들이 양반으로 신분 세탁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너도나도 제사는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 그러다가 2차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어 제사상의 허례허식은 더욱 극성을 부렸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1960, 70년대 이후 자기 집안의 뿌리가 양반이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몇몇 종가집 제사 풍속을 나름대로 짜깁기하여 집집마다 더욱 많은 음식과 복잡한 예법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로 인해 집집마다 가례가 있다는 ‘가가례(家家禮)’라는 말까지 나왔다.

더욱이 추석은 절기로 봐서 미국식 추수감사절과는 다른 명절이다. 2020년 10월 1일, 2021년 9월 21일이 추석이었고 2022년은 9월 10일이다. 벼를 본격적으로 수확하기 한참 전이다. 추수라는 고된 노동에 앞서 쉴 틈을 주자는 추석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민족 최대명절’이니 ‘풍성한 한가위’라는 둥 대대적인 소비 세리머니를 통하여 본질주의적 오류를 조장하는 셈이다.

제사가 있는 날은 마당에 개를 묶어두는 집안이 있었다. 연유를 알고 보니 황당하다. 그 옛날, 제사를 지내는데 마당에 있던 개가 제사상의 음식 냄새를 맡고 마루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아버지는 그 개를 쫓아냈다. 그 아들은 아예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개를 묶어 두었다. 아들의 아들은 이유도 모르고 제삿날은 개를 마당에 묶었다.

관습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알고 보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더욱이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왜곡된 것들도 있다. 제례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아버지에게 ‘감놔라 배놔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지시에 순종할 뿐 그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이제 나는 이러한 관습이 유사(類似)양반 폼을 잡기 위한 허세였다는 사실 앞에서 내년 설, 며느리에게 던질 파격적인 선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