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용석의 시사탐방] 야망과 깜냥

  • 김용석 철학자
  •  |   입력 : 2021-10-21 19:47:01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미국의 교육자 윌리엄 클라크는 일본 메이지 유신 시기에 현대식 전문학교 설립을 위해 일본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당시 그가 했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졌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추측컨대 일제 강점기에 수입되어 널리 퍼졌던 것 같다. 나도 학창 시절 자주 들었던 말이다.

군사정권 때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당시 소년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장군 또는 대통령이란 답이 다수였다. 어른들은 이런 답에 “그 놈 참 포부도 크다.”며 칭찬했다. 그러니 야망이란 말을 매우 긍정적 의미로 썼고, 그냥 성공보다는 ‘대성(大成)’한다는 말을 좋아했다. 이런 말들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뜻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런데 클라크의 말은 정치적 야심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이기적으로 대성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을 이루기 위해 큰 뜻을 품어라!” 그는 축재(蓄財), 출세, 허명(虛名) 등을 오히려 경계하며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위해 큰 뜻을 품으라고 한 것이었다. 도덕적인 주문이었다.

아마도 당시 군국주의가 거세던 일본에서 클라크의 말을 거두절미하고 자기들 편한 대로 야망의 의미를 해석해 그 ‘명언’을 퍼뜨린 것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도 야망이란 말을 아주 좋아한다. 청소년들에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야망을 품으라고 한다.

야망은 매우 정치적인 용어다. 이는 그 어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서구어에서 야심 또는 야망을 뜻하는 말들은 라틴어 ‘암비오(ambio)’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암비오는 ‘돌아다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암비티오(ambitio)’라는 말이 나오고, 이는 고대 로마에서 관직을 얻으려는 자가 돌아다니며 파벌을 만들고 지지를 얻어내는 행위를 뜻했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인기 작전을 뜻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다.

정치사상사를 보면 고대로부터 야망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동서양 고사에서도 나랏일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쓰기 위해, 거만하게 나대는 자는 경계하고 오히려 숨어 있는 현자를 찾아 다녔다. 마키아벨리같이 권모술수를 주창했다고 여겨지는 사상가도 야망은 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악덕이자 폭군 정치로 가는 길이라고 경계했다.

야망은 욕망과도 다르다.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야망을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야망은 그것에 사로잡힌 자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나 위험한 것이다. 야망은 전제 군주 시대의 의식이 담긴 언어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야망의 정치인’들이 나선다. 임금 왕(王) 자에 집착하는 후보도 등장한다. 미신이라고? 천만에, 그건 의식의 문제다. 왕 자가 고대 권력의 상징인 날 선 도끼를 세워놓은 형상의 갑골문에서 나온 글자임을 상기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런 모든 우려에도 선거판에 뛰어든 자의 야망을 제어하기란 어렵다. 무엇보다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에겐 야망의 정치인이 인기 있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보다 권력의 아우라가 강한 대통령제의 선거가 훨씬 더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합리적 유권자와 건강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있다. 그것은 야심가의 깜냥을 검증하는 일이다. 곧 나랏일을 맡아서 해낼 만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스트라우스의 말을 확장해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야망은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하려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허영과 야망이 없는 정치인은 없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야심가는 나름 영리함을 발휘해왔다. 그 영리함이란 자신의 야망에 깜냥이 상응하는지 항상 스스로 검증하는 노력이었다. 그럼으로써 야망에 균형을 맞추는 깜냥이라는 저울추를 지속적으로 늘려가는 노력 또한 했다. 카이사르가 그랬고 나폴레옹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제왕의 시대 인물들이었고, 그런 노력에도 말년은 모두 비참하고 불행했다.

나는 지금 괜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큰 뜻’을 품고 대선에 나선 분들께 이런 말은 소음 수준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유용한 조언을 하나 하고자 한다. 대선은 장거리 경주이니 지금쯤 미리 특별한 건강 검진을 권유하고 싶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동물의 감정 상태와 신체 변화 사이의 관계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바 있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우리의 모든 감정은 몸 속 장기의 변화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사랑에 심장이 두근대고, 슬픔에 창자가 끊어지며, 분노에 피가 끓는다고 말한다. 비유적이긴 하지만 이런 표현 역시 신체의 생리적 현실을 반영한다. 깜냥에 비해 야망이 지나치다면 간이 부었기 때문일 수 있다. 건강 검진의 권유는 진지한 조언이다. 나랏일을 잘 하려면 의식의 건강, 내장의 건강 모두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MM 호실적에도 성장전망 ‘흐림’
  2. 2비용 탓 경비원 줄인다더니 관리직 급여 인상? 주민 반발
  3. 3이 판국에…코로나 예산 다 깎은 부산시
  4. 4“산업용지가 없다” 기업 호소에 박 시장 “산단 구조조정할 것”
  5. 5야당 박형준 재판 시장선거 변수…여당 대선 이겨야 반전 기대
  6. 6대선에 가려진 지방선거…“홍보 어쩌나” 신인 속앓이
  7. 7코로나 대응 쉴 틈 없는데…재택치료 의무화 엎친 데 덮쳐
  8. 8여당 1호 영입 조동연 혼외자 의혹…이재명 “국민 판단 살필 것” 신중
  9. 9예상 밖 조용한 FA 시장…소문만 무성
  10. 10부산시 대저대교 환경적 관점 접근…이번엔 최적 노선 이끌어 낼까
  1. 1야당 박형준 재판 시장선거 변수…여당 대선 이겨야 반전 기대
  2. 2대선에 가려진 지방선거…“홍보 어쩌나” 신인 속앓이
  3. 3여당 1호 영입 조동연 혼외자 의혹…이재명 “국민 판단 살필 것” 신중
  4. 4조동연 공식 사의… 송영길 “사회적 명예살인, 강용석 고발”
  5. 5단체장의 치적 홍보, 3일부터 전면 금지
  6. 6낮엔 대선운동, 밤엔 얼굴 알리기…경쟁자 반칙 CCTV 감시도
  7. 7여야 내년도 예산 최종 합의 불발…지역화폐 등 이견
  8. 8구청장들 막판까지 극한 스케줄…현직 프리미엄 최대한 활용
  9. 9607조 규모 내년 예산안 본회의 통과
  10. 10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에…한미 작전계획 수정 착수
  1. 1HMM 호실적에도 성장전망 ‘흐림’
  2. 2“산업용지가 없다” 기업 호소에 박 시장 “산단 구조조정할 것”
  3. 3달콤촉촉 트리 케이크로 근사한 홈파티 어때요
  4. 4“여성 해기사 늘리려면 업계 인식 바꿔야”
  5. 5유통가는 지금 ‘홈파티 준비 중’
  6. 6겨울 딸기왕국 오세요
  7. 7“비수도권 기업 어깨 펴도록 법인세 인하 해달라”
  8. 8예비창업자 대상 해양산업 지식토크쇼
  9. 9척아이롤·생연어·제주 밀감…올해 베스트 먹거리 총출동
  10. 10세종기지 정밀 해도 제작, 안전한 남극 바닷길 확보
  1. 1비용 탓 경비원 줄인다더니 관리직 급여 인상? 주민 반발
  2. 2이 판국에…코로나 예산 다 깎은 부산시
  3. 3코로나 대응 쉴 틈 없는데…재택치료 의무화 엎친 데 덮쳐
  4. 4부산시 대저대교 환경적 관점 접근…이번엔 최적 노선 이끌어 낼까
  5. 5코로나19 확산에 사적모임 인원기준 강화한다
  6. 6법원, '고발 사주' 손준성 영장 또 기각
  7. 7오늘의 날씨- 2021년 12월 3일
  8. 8“해설 늘려달라” “숨은 지역문화 찾아줘요” 독자 바람 한가득
  9. 93일 부울경 대체로 흐려...경남 오전까지 눈·비
  10. 10해피-업 희망 프로젝트 <63> 언어발달 지연 신하은 양
  1. 1예상 밖 조용한 FA 시장…소문만 무성
  2. 2롯데, 투수 이동원·내야수 박승욱 영입
  3. 3김한별 부활…후배 이끌고 공격 주도
  4. 431년 만에 MLB 직장폐쇄…김광현 FA 협상 어쩌나
  5. 5맥 못 추는 유럽파…황희찬 5경기째 골 침묵
  6. 6측정 장비 OUT…내년부턴 눈으로만 그린 관찰
  7. 77년째 축구 유소년 사랑…정용환 장학회 꿈과 희망 쐈다
  8. 8네이마르 다음이 손흥민…세계 6위 포워드로 ‘우뚝’
  9. 9롯데와 결별 노경은, SSG서 재기 노린다
  10. 10MLB 직장폐쇄 우려에…숨죽이는 한국 프로야구
대선주자에게 듣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PK상임위장의 지역발전 약속
민홍철 국방위원장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2021년 6월 25일 아침에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이 땅에서 영원히 젊은이로 남은 그들
무위자연(無爲自然) 정신으로 살아가기
기고 [전체보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위한 국고지원 확대를 /서정도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이명원
기명칼럼 [전체보기]
일본 총선과 험난할 대일외교
복지국가 지속가능성과 기본소득
기자수첩 [전체보기]
기대되는 ‘걷기 도시’ 김해 /박동필
작년 산재로 스러진 882명, 세상에 당연한 죽음은 없다 /이준영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지금 한국인은 어리둥절하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피노키오의 거짓말과 디지털 세상 속도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야망과 깜냥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시 듣고 싶은 장인의 북소리
수신(修身)을 위한 음악 선비음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시·시의회 불통에 시민 피로도 상승 /송진영
도청도설 [전체보기]
이색 대선 풍경
오미크론과 낙인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앞치마 입은 자영업자 영정사진 /김옥숙
슬기로운 코로나19 대처방법 /신우원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중국식 부세 간장조림 ‘홍소황화어’
굴 ‘알쓸신잡’
사설 [전체보기]
인재 떠나는 부산 가족·복지 싱크탱크 자구책 마련을
정부 거리두기 강화 카드 앞서 국민 설득이 먼저다
수소칼럼 [전체보기]
수소경제는 부산 성장의 기회 /이욱태
여론 광장 [전체보기]
코로나시대 커뮤니티 비즈니스 ‘관광두레’ /조윤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후협약 결론은 ‘어쩌고저쩌고’
혁신, 엑스포 그리고 해리티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중국 정부가 악수를 두고 있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돌봄’의 마음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이재명 국감’ 관전기
일상 회복으로 가는 길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너 해봤어?
정책 제언 [전체보기]
지방대학 대위기 ‘준공영제’로 넘자 /김종한
가상화폐 정책과 블록체인 특구 /김홍배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필하모니 감상시간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지방모순’ 타파 개헌, 뭐라도 하자
‘다시’ 검찰을 생각한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영화 속의 와인
최고의 와인은 어디에 있을까?
특별기고 [전체보기]
‘대한민국 부산호’ 항해가 성공하려면 /오성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포디엄의 제왕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수운 유덕장의 ‘묵죽도’
‘불이선란’의 인장
  • 충효예 글짓기대회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