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묵화 소재 중의 하나가 대나무를 그린 ‘묵죽화(墨竹畵)’이다. 수많은 화가들이 대나무 그리기를 즐겨, 누가 잘 그렸는지를 따지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보통 조선 중기의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과 조선 후기의 수운(峀雲) 유덕장(柳德章, 1675-1756),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를 3대 묵죽 화가로 꼽는다. 그러나 ‘흉중성죽(胸中成竹)’을 표방한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묵죽이 이들에 뒤질 리 없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대나무 그림도 명품 반열에 오를 만하다. 그럼에도 위의 세 사람을 3대가라 칭하는 것은 평생 동안 주로 대나무를 그렸기 때문이다.
| |  |
| 유덕장 ‘묵죽도’. 개인 소장 |
위의 세 명 중에서 조선시대 묵죽화의 중심이라면 단연 유덕장을 꼽을 수 있다. 이정의 묵죽화가 좋다고 하나 필치가 강하고 귀족적이어서 일반 대중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유덕장에 와서야 그의 대나무 그림이 속세에 널리 알려져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유덕장은 이정의 영향권에 있었으나 자신만의 화법으로 발전시켜 조선후기 묵죽화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같은 시대 인물인 문인 신광수(申光洙)는 그의 문집 ‘석북집(石北集)’에서 유덕장의 묵죽화를 “당세의 짙푸른 수운의 대나무는 속세를 벗어나 그 기세가 드높다”고 썼을 정도다. 그만치 유덕장의 대나무 그림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유덕장의 묵죽화가 이정의 아류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정과는 다른 그만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정의 묵죽화가 강한 필력의 붓질로 줄기를 그리고 콕콕 찌를 듯한 날렵한 댓잎을 보이는데 비해, 유덕장의 대 줄기나 댓잎은 부드럽고 넉넉해 후덕한 느낌을 준다. 진한 개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무던한 맛이 있다. 이러한 장점에 대해 김정희(金正喜)는 “유덕장의 대나무는 힘도 있고 고졸(古拙)하며 마치 금강저(金剛杵)를 갖추고 있는 듯하다”며 후한 평가를 하였다.
요즘에도 많은 수묵화 작가들이 대나무를 그리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곧은 절개’라는 대나무의 상징성이 여전히 묵죽도를 그리게 하는 것 같다. 더욱이 현대의 문화적 성향이 수묵화를 선호하지도 않고 한문을 잘 쓰지도 않는 시절임에도, 아직도 묵죽도를 그리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묵화의 기본이 되는 붓과 먹의 사용이 예전처럼 능란하지 않고, 한문 서예나 한문 교육도 예전 같지 않아 예전처럼 빼어난 묵죽화를 그려내지 못한다. 더 이상 현대인과 호흡하지 못하는 경향이 보인다.
현대와 괴리된 조선시대의 겉모습만 이은 묵죽화는 큰 의미가 없다. 이제는 현대 미술 경향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묵죽화를 그려야 할 때이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식의 묵죽화가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