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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도 칼럼] 청암 기념관에 무궁화를 심는 까닭은

박태준 10주기 기념 식수, 철강신화 이룬 ‘제철보국’ ‘우향우 정신’ 오늘도 유효

대선 후보들 말잔치 금물, 실천하는 자세로 설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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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초 어느 날 밤 달음산이 갑자기 커다란 용으로 변해 용트림하는 꿈을 꿨는데, 그런 다음 태기가 있었어요.”

궁핍한 갯마을의 젊은 아낙이 친척들에게 전한 태몽 주인공은 1927년 음력 9월 29일 태어났다. 부산 기장군 달음산은 산꼭대기에 있는 기암괴석이 매력적이다. 달음산 정기를 품고 태어난 이 아이를 다룬 책의 달음산 내력이 이채롭다. 달이 뜬다 하여 ‘달음산’이라고도 하나, ‘달구어진 산’을 뜻하기도 한다며 철(鐵)과 연결 짓는다. ‘동국여지승람’의 ‘탄산(炭山)’이란 명칭을 통해 아득한 고대에 야철장이 있었다는 설을 이어 붙인다. 이 아이 이름은 태준(泰俊), 한학을 공부한 아버지가 ‘장차 크게 잘 되어라’는 소망을 담아 지었다.

이만하면 철강왕의 출생지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2004년 나온 ‘박태준’(현암사)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철로 나라에 이바지하겠다는 ‘제철보국’의 신념으로 우리나라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박태준은 꼭 10년 전인 2011년 12월 13일 별세했다. 2001년 7월 미국 뉴욕에서 폐 밑의 물혹을 제거하면서도 버텼던 그다. 당시 왼쪽 옆구리 33㎝를 절개해 갈비뼈 하나를 잘라낸 뒤 3.2㎏짜리 물혹을 떼냈다. 그 후유증이 10년 동안 그를 괴롭히다 결국 유명을 달리하는 화근으로 작용했다.

오늘 그의 고향인 부산 기장군 임랑리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태어날 땐 ‘푸짐한 것이라곤 가난과 파도소리뿐’이었으나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과 복원한 생가 등을 중심으로 임랑문화공원이 들어선 곳이다. 이 세상에서 보낸 84년 세월과 그동안 쏟은 열정에 어울리게 변한 모습이라 하겠다.

우선 10주기에 맞춰 ‘박태준기념관’ 정식 개관일을 이날로 정한다. 아쉽게도 당분간 일반 관람객을 받지는 못한다. 기장군청은 82억 원을 들여 5216㎡ 부지에 문화공원과 기념관을 2017년 준공했다. 준공 후 개관까지 걸린 기간처럼 곡절이 많았다. 땅에 얽힌 유족과의 소송 등이 예다. 이를 모두 정리하고 정식 개관할 수 있는 밑바탕엔 고인의 고향사랑과 함께 유족을 설득하고 시설을 다듬으며 오규석 기장군수 및 주민들이 들인 공이 깔려 있을 것이다. 오 군수가 “관광이나 추모만이 아니라 제2, 제3의 박태준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 공간이자 박태준 정신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으니 성과가 기대된다.

그 박태준 정신을 오롯이 간직하려는 행사는 따로 있다. 바로 기념관에 무궁화 심기다. 유족 대표와 오 군수, 그리고 고인이 평생에 걸쳐 이룬 포스코(옛 포항종합제철) 등 3자가 각각 한 그루씩 세 그루의 무궁화를 심는다. 물론 기념식을 하지 않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탓이다. 외부 인사를 초청한 행사를 취소했다. 덧붙이자면, 개관 기념 전시회인 ‘청암, 그리고 임랑’도 코로나19 상황을 봐가며 일반인 관람 시기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청암(靑巖)은 호암 이병철 삼성 회장이 고인에게 준 아호다. 호암은 일본 와세다 대학교 동문으로 17살이나 아래인 청암을 ‘살아 있는 경영 교재’라며 아꼈다. 청암의 인간미를 확인할 수 있는 한 축과 청암의 고향인 임랑을 담은 한 축으로 구성된 이 전시회를 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당장 박태준기념관을 찾을 순 없지만 그의 정신적 유산이 소중한 이유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무엇보다 ‘우향우 정신’이다.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제철보국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 세계 굴지의 철강기업인 포스코를 일군 종잣돈은 일제 식민지 배상금이었다. 그가 영일만 허허벌판에 세운 포스코는 산업화 시대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를 무궁화가 상징하는 애국이라면, 그를 지탱한 반대편 축은 ‘종이 마패’가 증명하는 청렴이다. 온갖 청탁과 상납의 고리를 끊으려는 의지였다. 제왕적 대통령의 신임에 힘입은 것이긴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이를 꺼내지 않고도 소신껏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급서 후에야 이를 공개했다.

물론 박태준이 완벽한 인간일 수는 없다. 5·16 군사 쿠데타, 전두환 신군부 세력과 닿아 있으며 2000년 1월 총리로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부동산 문제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국의 카네기’란 명성을 쌓으면서 보여준 그의 신념과 열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을 다투는 유력 후보들이 보이는 말잔치나 취약점을 따지자면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 사태에 편승해 돈 풀기 경쟁을 벌이는 한편 ‘대장동 의혹’ 및 ‘고발사주 의혹’을 떠안고 검찰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태준이 살아 있었다면 대선 후보들에게 이런 공자 말을 해주려 하지 않겠나 싶다. “그 말함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실천하기가 정말 어렵다.”(‘논어’ 헌문 21장)

논설실장 jsd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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