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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주정강화와인, 평형수, 그리고 섭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1-04 19:44:2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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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빵 700g과 콩 80g 그리고 와인 1ℓ. 일주일에 세 번 소금에 절인 고기, 일주일에 두 번 150g의 치즈와 소금에 절인 대구. 그리고 때때로 올리브와 대추야자.”
왼쪽부터 양식 홍합, 3년산 섭, 5년산 섭.
16세기 중반 신대륙을 찾아 떠난 스페인 배의 식사 기록이다. 선원들의 주식이었던 빵은 벽돌처럼 단단했고, 소금에 절여서 말린 돼지고기와 대구는 경악할 정도로 짰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선원들의 유일한 낙은 하루에 1ℓ씩 지급되었던 와인이다. 와인을 하루 1ℓ씩이나 지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알코올 도수 15% 정도가 한계다. 이 정도 알코올 도수에서는 미생물이 번식하기 때문에 와인도 상한다. 미생물이 번식할 수 없는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알코올 도수가 최소 20% 이상 되어야 한다. 유럽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 40%가 넘는,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를 섞었다. 이러면 장기항해에도 상하지 않는 알코올 도수 22% 정도의 와인이 되었다. 이를 ‘주정강화와인(Fortified wine)’이라고 한다. 주정강화와인은 장기항해에 따른 식수 문제를 해결하고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의 유일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와인을 이렇게 많이 실을 수 있었던 것은 항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에도 배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무게중심이 배 아래로 가야 한다. 그래서 대항해시대에는 배 밑바닥에 500~1000ℓ의 와인을 담을 수 있는 오크통을 빼곡히 실었다. 항해가 끝난 후에는 빈 오크통 대신 신대륙의 향신료를 가득 채워서 오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대항해시대에 와인을 가득 채운 오크통이 하던 역할을 오늘날에는 바닷물이 대신한다. 대형 선박의 경우 화물을 내리고 나면 부력으로 무게중심이 높아져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짐을 내린 선박은 아랫부분에 바닷물을 채워 무게중심을 낮춘다. 이렇게 채운 바닷물을 선박 평형수(Ballast Water)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 평형수를 접안한 항구에 마구 버렸다. 바다에 바닷물을 버리는 것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평형수와 함께 다양한 해양생물이 실려와 생태계를 교란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건 상관없지만 문제는 아무 곳에서나 잘 적응하는 생물들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중해담치’다. 1950년대 경남지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중해담치는 적응력이 놀라웠다. 순식간에 우리 바다 곳곳에 뿌리내렸다. 심지어 대량 양식까지 가능해 어민의 소득증대에도 한몫했다. 급기야 홍합이니 담치니 하는 이름까지 차지했다. 불법 이민자 주제에 토착종을 몰아내고 주인 노릇을 하는 셈이다. 오늘날 한국인이 홍합으로 알고 먹는 90% 이상이 외래종인 지중해담치다.

우리 바다에서 오래전부터 토착종으로 살아온 홍합은 이제 ‘섭’으로 불린다. 지중해담치와 섭은 그 크기와 육질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에 끓이면 지중해담치는 뿌연 국물이 우러나는 반면 섭은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국물의 감칠맛 또한 천지차이다. 우리 조상들이 왜 섭을 보양음식으로 귀하게 여겼는지는 섭을 먹어보면 대번에 수긍이 간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섭을 조금 큰 홍합 정도로 생각하면, 섭이 무척 섭섭해한다.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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