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알래스카라고 하면 극한 추위나 에스키모, 이글루(얼음집) 같은 단어가 연상된다. 북미 최고봉이자 북극권인 매킨리봉(해발 6194m)도 알래스카에 있다. 매킨리봉은 에베레스트보다 혹한이 심하고 산세가 너무 험해 제2의 극지로도 불렸다. 1979년 5월 한국 원정대가 매킨리봉에서 조난 참사를 당한 것도 그 같은 요인이 컸지 싶다. 당시 영하 40도의 악천후 속에 등반하던 ‘에베레스트의 영웅’ 고상돈 대원을 비롯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1989년 1월 알래스카 주에서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체감온도가 영하 82도까지 내려가는 한파로 육상·항공 교통이 끊겼기 때문이다. 매킨리봉 인근 지역은 영하 60도를 찍었고, 남부 도시인 앵커리지 쪽에서는 그나마 영하 26도를 보였다. 그 정도로 알래스카의 추위는 악명이 높았다.
그랬던 알래스카에 봄 같은 날씨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얼마전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알래스카 최대 섬인 코디액의 지난달 26일 기온이 섭씨 19.4도를 기록했다. 이는 알래스카의 12월 관측 온도 중 역대 최고다. 다음 날에도 15도가 넘었다니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래스카의 12월 평균기온은 영하 5~0도에 이른다. 결국 알래스카에서도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주지하듯이 기후변화는 심각한 양상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는 빙하가 과거 수세기 평균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음이 위성사진 분석에서 드러났다. 어제가 연중 가장 추운 절기인 ‘소한’이었지만, 우리의 사계절과 24절기도 점점 바뀌는 추세다. 기상청의 지난 109년간 분석 결과를 보면, 이 기간 우리나라의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이나 짧아졌다.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금세기 말에는 한해의 절반이 여름일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국내 가전업계에서는 이미 ‘계절 경계’가 무너졌다고 한다. 이상기후가 잦다 보니, 특정 계절에 집중됐던 가전제품들이 철을 가리지 않고 팔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철없는 가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예전에 사업·마케팅 능력이나 상술이 아주 뛰어난 것을 비유해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인들에게도 냉장고를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 우스갯소리로 회자됐다. 하지만 이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갈수록 빨라지는 기후변화를 감안하면, 앞으로 그런 일이 흔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뜻한 봄날 같은 알래스카 날씨가 씁쓸하기만 하다.
구시영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