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언론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는 클린턴 당시 대통령, 테레사 수녀, 설문 대상자 등 세 선택지를 두고 “누가 천국에 갈 확률이 가장 높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클린턴(52%)과 테레사(79%)보다 ‘자기 자신’, 즉 질문을 받은 당사자(87%)가 더 높게 나타났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자기 중심적 사고는 가진 권력이 클수록 강하다. 2007년 미 노스웨스턴대 갤린스키 심리학 교수는 권력그룹과 권력결핍그룹으로 나눠 이마에 ‘E’자를 쓰게 했다. 실험 결과 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쓴 경우가 권력그룹에 비해 권력결핍그룹이 세 배 이상 많았다. 권력그룹이 글자 읽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 사고 경향을 보였다는 뜻이다.
1990년 무렵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 ‘내 탓이오’ 운동이 일어난 건 극심한 자기 중심적 사고의 병폐 때문이었다.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가슴을 세 번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하는 기도문에서 유래된 운동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오’ 스티커를 자동차 뒷유리에 붙이고 다니면서 국민적 회개운동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이 운동은 90년대 중반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각자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듣고 믿겠다는 ‘확증편향’으로 자기 중심적 사고가 강화되는 추세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로 열연한 배우 오영수(78)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남긴 말이 자기 중심 세상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얼핏 자기 중심적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건 오해다. 오히려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인 ‘부정의 부정’과 같은 삶이 느껴진다. 부정의 부정은 지속적 성찰(부정)을 통해 발전하는 인간사의 과정을 의미한다.
배우 신구는 “오영수는 뒤에서 연극을 받치며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배우”라고 했다. 50여 년 배우로 활동하며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보다 출연진 전체의 조화와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는 뜻이니, 그 세월 동안 자기 부정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오징어 게임 흥행 이후 광고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작품의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거절했다는 데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읽힌다. “나는 괜찮은 놈”이란 그의 말은 참 정겹다. 부정의 부정 끝에 이룬 자기 긍정이어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