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 하나하나를 우리 말로 단순하게 풀어보면 ‘첫 번째 여인’이 될 성 싶다. 퍼스트레이디(the First Lady)를 말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대통령이나 수상의 부인’, ‘각계에서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여성’을 지칭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퍼스트레이디는 한 나라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여성으로 보이는데, 남들보다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 하겠다. 한 나라에서 선택받은 딱 한 명의 여성인 셈이다.
과거 왕권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왕후가 제일 높은 여성이었다. 최고 통치자의 동반자라는 점에서 일종의 ‘그림자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신분이다. 왕후가 죽거나 폐위당하면 차기 권력을 이어받을 세자 부인, 그도 여의치 않으면 왕의 첫째 딸(공주)을 퍼스트레이디 반열에 올릴 수 있겠다. 권력이 세습되는 군주국가 시대를 지나 국민이 통치자를 선출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퍼스트레이디라는 단어가 보통 ‘대통령의 부인’을 뜻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부인(令夫人)’으로 부르기도 했다. 사전에는 영부인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표현한 만큼 대통령 부인도 높여 ‘영부인’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만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영부인을 안 쓰다시피 하다 보니 그 의미가 ‘대통령 부인’으로 굳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대통령 부인의 이름 뒤에는 ‘여사’가 따라붙었다.
선출직 국가 원수의 부인을 이르는 말로 미국에서 유래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 돌리 매디슨이 퍼스트레이디로 불린 것이 그 시작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1명의 퍼스트레이디가 등장했다. ‘헌법상 직책도 없고, 월급도 없는 신분’이지만, 선출직으로 통치자 자리에 오른 남편 덕분에 막후 실세 역할을 한 퍼스트레이디도 없지 않았다.
이번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는 퍼스트레이디 후보가 대선 후보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각 당 대선 후보 부인의 과거 행적 등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무성한 탓이다. 대통령보다 퍼스트레이디 고르는 선거로 변질됐다는 투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비호감 대선’으로 평가받는 이번 선거가 갈수록 희화화하는 양상이다. 뒷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