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선거는 막판까지 변수가 많아 매우 흥미롭다.”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7년 11월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관전평이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뜬금없이 이회창 씨가 선거에 뛰어들면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가 급부상했던 것. 비슷한 시기, 워릭 모리스 영국대사도 인터뷰에서 새 변수 등장에 다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대선을 보려고 임기 1년 연장을 자청했던 그로선 충분히 그럴만했다.
아마도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외국대사들 또한 비슷한 재미를 느낄법하다. 단일화가 올해 대선에도 어김없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 ‘역시 한국정치의 역동성이란!’ 이렇게 탄복할지 모른다. 반면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차라리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지 왜 난리법석일까’라면서. 실제 대통령제를 채택한 프랑스 등 80개 넘는 국가가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간선제인 미국을 제하면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예외다.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 간 결선투표가 있다면 한국 선거 양상도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일단 1차 투표 땐 모든 후보가 2위 안에 들기 위해 저마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론 결선투표 땐 3, 4위 후보 지지를 얻기 위한 정당 간 합종연횡은 필수다. 그러나 현재 단일화 모습과는 전혀 딴판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론조사 단일화를 겨냥한 치졸한 샅바싸움도, 감정대결도 필요 없다. 대신 선거연합을 통한 승리 후 권력분점 원칙에 대한 담판이 있을 뿐이다. 유권자들은 정치공학적 셈법만 난무했던 단일화 때보다 차분하게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선자 역시 50% 이상 득표율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때문에 결선투표 도입법이 여러 차례 국회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헌법 개정 사유라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대선 먹으면 지선(지방선거)은 덤이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올해 3월 대선 승리가 6월 지선 압승 보증수표라는 얘기다. 이제껏 집권초 실시된 지선은 대선과 강한 동조화 효과(coupling effect)를 보여줬다.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여세를 몰아 지선까지 쉽게 이겼던 것. 여당 승리로 끝났던 1998년(집권 1년 차) 2차, 2018년(집권 2년 차) 7차 지선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지선은 대선 후 3개월도 전에, 새 정부 출범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실시된다. 새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반면 야당은 대선 패배 충격을 추스르기 어려울 때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지방권력까지 얹어줄 게 불 보듯 빤하다. 차라리 대선과 지선을 한꺼번에 하면 선거비용이라도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문제 원인은 단 하나, 대통령(5년)과 지방단체장(4년)의 임기 엇박자다. 이를 손보지 않으면 권력 편중과 국력낭비를 초래하는 사례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임기 역시 4년인 탓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 임기 조정을 통한 들쭉날쭉 정치일정 수정 얘기가 제기돼왔다. 그러나 결론은 도돌이표. ‘대통령 임기 5년’을 못 박은 헌법에 번번이 막혔다.
정작 대선 후 개헌이 꼭 필요한 핵심적 이유는 다른데 있다. 현재 이재명과 윤석열, 여야 유력 후보의 비호감도는 공히 60%를 넘나들고 있다. 본인은 물론 처와 아들 또는 장모를 둘러싼 각종 의혹 탓이다. 그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둘은 다소 싱겁게 당 후보를 따냈다. 두 사람만이 각 당의 필승 카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길 수만 있다면 윤석열이 괴물이면 어떻고 악마면 어떤가.”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재원의 말이 둘을 화끈하게 민 지지층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영혼을 팔 만큼, 승리가 절실한 까닭은 뭘까. 이기면 승자독식의 대박과 제왕적 권력이 보장된다. 반대로 지면 쪽박과 처절한 정치 보복이 기다린다. 두 후보는 직접 상대를 겨냥해 “감옥 갈 것”, “구속될 사람”이라며 치고받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단두대 매치’. 30여 년의 진영 간 사생결단식 대결에 어느새 민심도 두 쪽으로 쫙 갈라져 버렸다. 각 지지층의 사이버 커뮤니티는 적개심을 부추기는 시퍼렇게 날 선 말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누가 당선돼도 국민통합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대통령, 여야협치, 인사탕평’도 모두 정치적 사탕발림으로 끝날 것이다. 누구보다 후보 자신들이 잘 알 거다. 판을 제대로 읽는 ‘이핵관’과 ‘윤핵관’이라면 이미 ‘선거 불복’을 걱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책은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을 위한 개헌밖에 없다.
가장 힘이 센 집권 초, 골든타임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선거 전략상 개헌을 당장 말할 수 없다면, 도상연습이라도 충분히 미리 해놓아라. 무엇보다 후보 스스로가 의지를 확실히 다져야 한다. ‘성공한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나눌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