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니었다. 지난 토요일 경남 통도사를 찾아 자장매를 살펴봤다. 터질 듯이 꽃봉오리가 앞다퉈 부풀긴 했으나 활짝 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 싶다. 꽃잎 5장을 모두 펴고 고운 분홍빛을 뽐내는 것도 있었지만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그나마 봄의 전령 역할에 애쓴다고 여겨져 반가웠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자장매가 만개했으니 이제 봄이다’ 하긴 이르다.
해마다 입춘 무렵부터 자장매 개화 소식을 전해주던 사람들이 있었고, 여럿이 어울려 확인하기도 했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파했다는 곳, 신선과 독수리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였다는 이름을 따온 영축산의 산세가 그만인데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와 여러 말사를 둘러보는 의미도 남다르다. 자장매는 통도사 경내 영각 오른쪽 앞마당을 지키고 있다. 영각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곳이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뜻을 이었다는 자장매는 이웃한 홍매 두 그루와 함께 봄을 알리는 매화나무로 유명하다.
느긋하게 자장매 개화 소식을 기다리지 않고 일삼아 통도사까지 간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영축산 자락인 평산마을에 짓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외관 공사를 마치고 내부 인테리어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통도사에서 차로 가면 지척인 마을이다. 먼발치에서 마을 전경과 사저 위치를 가늠하며 퇴임하는 문 대통령의 마음이 어떨까 짐작해봤다.
2017년 5월 10일부터 19대 대통령 업무를 시작한 문 대통령 임기는 오는 5월 9일 자정까지다. 40%를 웃도는 지지율을 유지한 채 임기 마지막까지 위기극복 정부로서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나 사정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오미크론 변이 대확산으로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벽에 부닥친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아쉬운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세계 7대 통신사와 합동으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임기 내에 종전선언을 이루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며 여건을 더욱 성숙시켜 다음 정부에 넘겨주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아쉬움이 크다면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의미 아니겠나.
부동산 대책과 분권 개헌은 정책 의도와 현실이 엇갈린 사례다.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부동산 정책으로 오히려 치솟은 아파트값은 이 정부의 성적표 평균값을 깎아먹는 악재가 됐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 투표를 목표로 같은해 3월 문 대통령이 발의한 지방분권을 포함한 개헌안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는 물론 기후변화 대응 같은 세계적 난제에 적극 대응하는 방안으로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균형발전을 이루려는 노력은 앞으로 배가되어야 마땅하다.
조국 사태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인선은 두고두고 곱씹을 사안이라 하겠다. 최근 윤 후보의 적폐청산 수사 발언을 두고 문 대통령이 현 정부에서 검찰 요직을 맡았을 땐 적폐를 못 본 척 했다는 말인지,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며 강경한 어조로 반박한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검찰 개혁은 문 대통령 1호 개혁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논란도 많았다.
오늘 20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3월 9일이면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윤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야권 단일화가 최대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여야 후보가 피말리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그럴수록 윤 후보가 제기한 적폐청산 수사론이 쟁점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후보가 국민을 둘로 쪼개 득표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건 온당치 못하다. 백번 양보해 문재인 정부에서 빚어진 잘못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지 대선 정국 한복판에 깃발처럼 꽂아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저는 대통령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며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양산 사저는 그 연장선이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 낙향하는 사례는 2008년 김해 봉하마을에 터전을 마련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영위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데 유권자들도 나서야 할 때다. 남은 선거기간, 윤 후보가 공언한 ‘정치 보복은 없다’는 말이 현실이 되도록 다짐받고 또 받아야 한다. 이는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느냐 마느냐와는 별개의 사안일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할 과제이다.
내년에도 봄이 오고, 통도사 자장매는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그 소식을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싶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제대로 봄을 즐기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