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들이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한 지난 5일 오후 부산 금정구 한 투표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금정구보건소가 보내준 확진자 사전투표 안내 문자를 다시 확인하며 걸어서 5분 거리인 투표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10분께.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엔 긴 대기줄이 2개 있었다. 하나는 일반인, 또 하나는 확진자. 봄볕만큼 가벼운 차림이었고, 긴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 생각했다. 웬걸, “뭐하는 거요, 왜 기다리는지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소”라는 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확진자들이 만든 긴 대기줄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꼬리쪽이 길어지고 있었다. 속절없이 30분가량이 흐른 오후 5시40분께서야 방호복에 마스크 위로 얼굴 가리개까지 착용한 선거사무원으로부터 ‘53’이 적힌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이미 봄볕 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가벼운 차림은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준비를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바깥에 세워두고 푸대접하느냐’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집에 가서 두툼한 겨울 외투를 찾아 입고 투표소에 되돌와 왔더니 겨우 10m쯤 자리가 앞당겨진 것 빼곤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선거사무원이 둘로 늘어났으나 손발이 맞지 않아 오히려 혼선을 빚었다. 투표용지 인쇄를 위해 A4 용지에 기입한 개인정보를 가져간 뒤 차례를 놓치기도 했고, 그제서야 기표소를 하나 더 설치한다고 수선을 피웠다. 기표한 투표용지를 회송용 봉투에 넣으며 기표소에서 나오니 선거사무원이 “투표함에는 저희들이 넣겠다”며 이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투표함이 어디 있으며 어떤 지침에 따라 이렇게 한다는 설명은 없었다. 그보단 “다음 사람…”하는 말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지난 4일과 5일 대선 사전투표에 1632만여 명이 참여해 사전투표율 36.93%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 기록이라지만 코로나19 확진자 투표의 대혼란으로 빛이 바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본투표에선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준비 부족과 관리 부실 탓이다. 일반인과 확진자의 동선 분리 및 예외 없는 투표소 관리라는 원칙만 있었지 변화하는 흐름을 담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앞서 소개한 투표소도 생각보다 많은 인원, 특히 확진자들이 몰려들자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확진자들을 위한 별도의 선거사무원은 애초부터 없었지 싶다. 사전투표의 취지가 ‘투표권 보장’에 있고, 이는 감염병 확진자에게 특별 외출을 허용할 만큼 긴요하다. 이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소로 향한 이유는 선거를 통한 변화다. 그런데 이 ‘소중한 한 표’를 소홀히 다루며 ‘직접·비밀투표의 원칙마저 팽개쳤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편없는 투표 관리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로만 남게 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처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선거를 겪고 있다.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0선 후보’들이 거대 여야 양당의 대선 후보가 되면서 혹독한 ‘검증 선거’가 진행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얽힌 대장동 의혹은 기본이고 두 후보의 배우자 문제도 만만찮다. 대선 후보 배우자를 선거전에서 볼 수 없는 사례가 있었던가. 이런 최악의 비호감 후보들이 막판까지 초접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공약도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민원 해결 위주의 공약,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와 다를 바 없는 깨알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7자 공약’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왜 여성가족부가 없어져야 하는지 합리적인 논의 없이 혐오와 갈등을 득표에 이용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면이 더 걱정스럽다. 페미니즘과 세대 문제는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나 기후위기 대처 등과 함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보다 광범위한 토론 절차를 거쳐야 할 의제로 꼽힌다.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이를 가볍게 여기는 나쁜 전례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위한 고민 속에서 이뤄진다.
이처럼 성숙한 공동체 건설과 바람직한 미래 비전을 겨루는 정책 대결 대신 오직 ‘당선’의 단물에 취한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포퓰리즘 정치의 종착역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답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충실히 하는 화두로 지방과 분권, 양극화 해소를 첫 손에 꼽아야 마땅하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진흙탕 싸움에서 실종된 화급한 과제다. 내일 20대 대통령 선거엔 만 18세 청소년이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다. 우리의 미래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