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최근 정관을 변경해 원장 자격요건 성별을 여성에서 남녀로 바꿨다. 양성평등이 강조되는 시대상을 반영해 남성도 원장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성이 수장인 부산시 공공기관이 드문 데 개발원마저 남성이 대표자리를 꿰찰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08년 개발원 출범 당시 전상수 초대 원장부터 6대 현 오경은 원장까지 모두 여성이 원장이었다. 하지만 개발원이 여성만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이 아닌 양성평등과 가족 복지를 다루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관 변경은 당연한 결정이다. 물론 원장은 정치적 색깔보다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개발원이 부산에서 양성평등과 가족 등에 대한 정책 연구 기능을 한다면 국가적으로는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이런 역할을 한다.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여가부 해체’는 뜨거운 이슈였다. 이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3일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폐지 강행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든 것이 윤석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가부 폐지 공약에 제동을 걸었다. 윤 당선인 공약대로 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므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 결과가 초박빙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선거 막판 2030 여성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결집한 것이다. 지난 9일 20대 대선 출구조사 발표 직후 몇시간 내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후원금 12억 원이 쏟아졌다고 한다. 국민의힘 측의 ‘이대남(20대 남성)’ 공략에 대한 반발로 이 후보에게 표를 주고, 심 후보에겐 후원금을 내 미안함을 던 유권자들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5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2030세대 ‘남녀 갈라치기’ 선거 전략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부처 중 국민 마음에 100% 드는 곳은 없을 것이다. 교육부는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지는 학력격차와 청소년의 낮은 백신접종률탓에 비난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부를 없애자는 주장은 없었다. 다수의 국민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없애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여가부에 대해서는 비난이 쏟아지고 폐지 여론이 드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도 여가부 폐지다.
물론 그동안 여가부가 제대로 일을 했는지 곱씹어볼 필요는 있다. 1998년 출범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에 뿌리를 둔 여가부는 2001년 정식 부처로 격상돼 올해 21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호주제 폐지, 건강가정기본법과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을 통한 전국적 가족 지원 인프라 구축, 성폭력·성희롱 피해자 보호 지원체계 마련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 판단과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사례도 많았다. 잇따른 최고 권력층의 성범죄 사건에 피해자 편에 서지 않았고, 지난해 2월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했던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논문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비난받았다.
그렇다고 성 평등 가치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부처를 없애는 것은 맞지 않다. 윤 당선인은 과거에는 집합적 성별 차별이 심해 여가부가 필요했으나 지금부터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불공정 사례나 범죄사안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사회에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여전하다. 이는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리천장지수 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29개국 중 꼴찌였다. 남녀 고등교육격차, 소득격차, 노동참여율, 고위직 비율 등 세부지표를 종합해 평가한 결과다. 한국의 남녀 소득격차는 31.5%로 OECD 평균(13.5%)의 두 배를 넘고 여성 중간관리자비율은 15.6%로 OECD 평균(31.9%)의 절반에 그쳤다. 여성의 노동 참여율도 59%(남성 79%)로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 근무 환경이 열악했다.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권력형 성범죄와 디지털 성폭력, 학대는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극단의 혐오정치로 젠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여가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는 뜻이다.
윤 당선인은 여가부를 폐지하기 보다는 개선하는 방안에 무게를 둬야 한다. 여가부가 2001년 정식 부처가 된 후 초대 한명숙 장관부터 13대 현 정영애 장관까지 수장이 모두 여성이었다. 성별이 중요하겠나 마는 이 참에 남성을 여가부 장관으로 임명해보면 어떨까. 남성의 시각에서 양성평등을 보고 정책을 수행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궁금하다. 가족복지와 양성평등을 제대로 실행할 기관으로 새출발하는 여가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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