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와인 전문가가 와인을 몇 모금 마시고는 “이 와인은 어떤 품종을 사용해 어느 지역에서 몇 년도에 만든 것이다”며 대번에 맞힌다. 잔에 든 와인 몇 모금 마셨을 뿐인데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맞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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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각은 철저하게 후천적이며 개별적인 감각이다. |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절대미각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느냐?”, “미각은 어떻게 길러지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는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절대미각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각은 철저하게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감각이다. 와인을 만든 포도 품종과 지역 그리고 생산연도를 맞추는 것은 일종의 소거법이다. 와인의 색깔 향 맛 밀도 등을 분석해 가능성이 작은 것부터 하나씩 제거하며 확률을 높이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와인에 관한 최대한 많은 데이터가 축적돼 있어야 한다. 와인 전문가라 함은 와인에 관한 절대적인 미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와인에 관한 엄청난 데이터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같은 방식으로 훈련하면 시중에 판매되는 희석식 소주의 브랜드도 얼마든지 맞출 수 있다.
인간이 맛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촉각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관능의 총체다. 혀의 미뢰에 있는 감각세포가 감지하는 미각 즉,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은 맛의 골격일 뿐 그 자체로 맛이 완성되지 않는다. 여기에 후각을 통해 감지된 향이 더해져야 비로소 맛이 구체화 된다. 인간의 혀가 감지하는 맛 성분은 고작 다섯 가지에 불과하지만 후각이 감지하는 향은 수만 가지에 이른다. 후각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콜라와 사이다, 된장과 청국장을 구분할 수 없다. 씹는 행위를 통해 느끼는 촉각은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찰기를 통해 멥쌀과 찹쌀을 구분하고 고기의 육질이 부드러운지 질긴지를 구분하는 것 역시 촉각의 영역이다. 청각은 미각을 활성화한다. 음식을 씹을 때 나는 소리가 뇌를 자극함으로써 반응을 끌어낸다. 식품 광고에서 효과음으로 신선함을 표현하거나 스낵에 질소 충전을 하는 것은 소리를 통해 자극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시각은 맛의 완성이다. 인간은 처리하는 정보의 약 60%를 시각에 의존한다. 맛있을 것 같은 음식과 맛없을 것 같은 음식, 심지어 값비싼 음식과 값싼 음식조차 시각을 통해 판단한다. 각종 SNS에 오늘도 수많은 음식 사진이 올라오는 것은 이미지가 맛을 전달하는 가장 단순하고 구체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맛은 이처럼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경험이라는 결정적인 변수가 더해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낯선 음식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태어난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맛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난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 극복하지 못하는 음식도 있다. 그리고 추억이다. 당신이 먹는 모든 음식에는 당신만의 추억이 결합해 있다. 그 추억을 통해 특정 음식에 대한 기호가 형성된다.
맛은 이처럼 철저하게 후천적이며 개별적이다. 당신의 맛은 당신만 결정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미각을 의심하지 말고 남들의 눈치도 보지 마시라. 그러잖아도 눈치 볼 것 많은 삶인데 먹는 것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당신의 기준이 언제나 정답이니 편하게 즐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