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오랜 기간 전 세계는 공급 과잉의 시대였다. 매장의 진열대는 항상 물건으로 가득 차 있고, 소비자들은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는 풍요의 시대였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전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세계 경제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한 국가가 모든 재화를 자급자족하기보다는 경쟁 우위에 있는 제품을 우선적으로 생산하여 다른 국가와의 무역을 통하여 서로가 필요한 것을 조달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탈(脫)세계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자원의 무기화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심화되고 있다. 희토류와 원유 등 천연자원에서부터 반도체 및 화학제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원들이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가 제한되고 있으며, 이제는 곡물이나 팜유와 같은 식량자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퇴조는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을 제한하여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있다. 자원의 무기화로 제품 생산이 원활치 못하여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무너지고, 팬데믹으로 인한 물류시스템 붕괴로 국가 간 제품 이동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GSCI)는 올 1분기에만 29% 넘게 올라 1990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2022년 2월 기준 한국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가는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은 일 년 사이에 400만 원에서 1400만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기업의 원가부담은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금리인상으로 이어진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자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으며, 팬데믹 기간 급증한 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국고채 및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불과 4개월 사이에 연초 대비 1% 이상 인상되었고, 기업들의 조달금리도 상승하여 기업의 자금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탈세계화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의 삼중고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매출액 기준 국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제조업 BSI는 94.8로 향후 기업환경이 현재보다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특히 수출, 채산성, 자금사정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뒤돌아보면 한국의 기업들은 과거에도 힘든 경영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해왔다. IMF 경제위기와 글로벌 외환위기 등 끊임없는 위기에도 잘 극복한 덕에 우리는 GDP 기준 세계 10위, 무역액 기준 세계 8위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위기 극복의 원동력은 우리 기업의 창의성, 변화에 대한 수용성, 빠른 의사결정 속도에서 나온다고 본다. 영화와 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민족의 창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 기업들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기업은 제조 석유 금융업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으로 대표되는 기술주 중심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역시 통신 전자 철강 금융 중심에서 벗어나 반도체, 2차 전지, 바이오, 플랫폼비즈니스 등 창의성이 요구되는 신사업 기술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면서 쉽게 수용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폼팩터(Form Factor)인 폴더블폰의 국내 보급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와 같이 테스트베드에 적합한 국내 소비시장 환경은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며, 기술의 변화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에서의 빠른 속도이다.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 문화는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른 작금의 기술 우선 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노키아와 소니의 사례에서 보듯, IT 기술 분야에서는 한 번 뒤처지면 순식간에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반도체나 2차 전지 산업의 경우 초기에는 일본 업체들이 주도했으나, 국내 기업들의 과감하고 빠른 투자 의사 결정으로 지금은 일본을 넘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탈세계화 인플레이션 금리인상이라는 삼중고가 밀려오고 있지만 우리 기업에게는 창의성과 변화에 대한 수용성, 그리고 빠른 의사결정 속도라는 DNA가 있다. 여기에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더해지면 어떠한 난관도 이겨내고 또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