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최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탈핵으로 가는 길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간의 탈핵 정책으로 뒷전에 밀려났던 핵발전 진영은 마치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년 4월에 40년의 설계수명이 끝나 폐쇄될 운명이던 고리2호기가 연장가동 절차에 들어갔다. 한수원은 이달 초 고리2호기에 대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기장군도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계속 운전돼야 한다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산업부는 지난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보고에서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지금보다 10%포인트 늘린 33.8%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재개와 월성1호기의 재가동에다 수명이 다해가는 10기의 운전을 계속 허용할 것이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이와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윤석열정부의 원전 부흥에 맞춰 핵발전 확대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지금, 우리는 핵발전의 악마적 속성을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핵발전은 단 한 번의 사고로도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재앙적인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체르노빌원전 사고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인적 물적 환경적 피해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원전을 폐쇄하기 위해 산처럼 거대한 철과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씌웠지만, 죽음의 사신이 언제 날개를 펼칠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체르노빌 사고의 직간접 인명피해만 300만 명으로 추산됐다. 사고 직후 출산율이 급감하고 기형아 출산이 잇따랐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각종 암에 노출되고 60%가 갑상선계 질환을 경험했다. 반경 30㎞ 안은 불모의 땅으로 전락해 아직도 거주 및 사용불능 지역으로 특별관리되고 있다.
2011년에 발생한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도 사람과 땅, 하늘과 바다를 엄청난 재앙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사고 당시 후쿠시마현 주민 16만5000명은 대대로 이어오던 삶터를 떠나 맨몸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 6만7000여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열도를 떠돌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수는 더는 관리할 수 없는 상태가 돼 급기야 해양 방출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핵발전의 절멸적인 사고도 문제이지만 사용후핵연료 폐기에도 엄청난 재앙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인류는 아직 핵폐기물의 방사능을 소멸할 때까지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세계 전역에서 발생한 핵발전 폐기물은 악성 종양처럼 영구적이고 치명적인 위험으로 임시 저장시설에 똬리를 틀고 있다. 국내도 포화상태에 이른 핵폐기물의 처리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고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
분식돼온 경제성 또한 핵발전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핵발전업계가 전가의 보도처럼 핵발전 단가의 저렴함을 내세우지만 폐로 과정에 드는 비용과 사회적 갈등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다른 발전보다 단가가 더 높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월스트리트 금융투자회사 라자드는 태양광 및 풍력의 사업용 발전량의 비용을 메가와트시당 약 40달러, 핵발전은 무려 4배나 많은 160달러로 추산한 바 있다. SMR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도 허점투성이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경제성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상용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시험가동되고 실제 운용되기까지 10년도 많은 시간이 아니다. 지금부터 10년간 탄소배출을 극적으로 감소시킬 수밖에 없는 인류의 현안에 SMR이 기여할 여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탈핵 정책 폐기를 선언한 윤석열정부 아래서 탈핵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 우리가 맞닥뜨린 엄혹한 기후위기 속에서 탈핵의 의미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석유문명을 구가하면서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한 결과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류 미래의 존망이 걸린 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온실가스를 현재보다 급격하게 감축하는 일로, 바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일이다. 그린피스 의장을 지낸 볼프강 작스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가려면 에너지 사용량을 현재의 10분의 1로, 즉 90%가량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탈핵의 길도 근시안적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급한 일은 인류가 에너지 사용을 급격하게 줄이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여전히 자본의 확대재생산,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성장 중독증에 벗어나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과감하게 내려놓지 못한다면 탈핵의 외침도 공허하기 그지없다.
탈핵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본의 논리에 갇혀 맹목적 성장에 목을 매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탈핵 운동은 풍요와 편리에 탐닉하며 과잉생산-과잉소비를 일삼던 자기 파괴적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돼야 할 것이다. 탈핵으로 가는 길, 탈성장을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