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은 한반도에 서광이 비친 해였다. 김대중(DJ)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시설을 폐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지 W. 부시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자 클린턴은 방북을 취소했다. 대신 김정일을 미국에 초청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DJ는 자서전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다면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졌을 것이고, 부시 정권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썼다. 6·25전쟁 휴전 47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의 봄’은 그렇게 시들었다.
2018년 또 기회가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반전평화를 다짐한 것이다. 한 달여 지나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남북 정상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그로부터 세 달 후 방북한 문 대통령이 10만여 평양 시민이 모인 자리에서 반핵평화를 거듭 다짐했을 땐 탈냉전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듬해 2월, 북미 정상의 ‘하노이 노딜’ 이후 한반도는 다시 겨울로 후퇴했다. 북한은 중단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재개했고,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와 금강산 해금강호텔 등 남북교류의 교두보도 사라졌다. 급기야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핵무력 강화”를 공언했다.
남북은 평화를 바라면서 왜 적대를 청산하지 못하는 걸까. 분명한 건 무력은 무력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이다. 핵무기에 핵무기로 맞서는 강대국의 ‘공포의 균형’ 정책이 그 표본이다. 트럼프는 이를 “힘 이념(strength ideology)을 통한 평화활동”으로 미화했다. 강대국이 이러니 약소국은 오죽하겠는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북 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순서를 다투듯 진행되는 건 한반도판 ‘공포의 균형’이다.
유일한 해법은 탈무력이다. 분단체제는 무장 해제로만 극복할 수 있다. 최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친서 교환을 통해 “서로가 희망을 안고 노력하면 남북관계가 민족의 염원과 기대에 맞게 개선될 것”이라고 뜻을 같이한 데서 탈냉전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내년이면 휴전 70년이다. 남북 모두를 파국으로 내모는 대결관계를 더 지속해선 안 된다. 평화는 반드시 이뤄야 할 당위다. 영화 ‘밀정’에 나오는 독립투사 김원봉의 말로 그 당위의 소망을 대신한다. “우리는 실패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