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강수연은 ‘월드스타’라는 말이 항상 먼저 언급된다. 한국영화계의 ‘원조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람이 없다. 생전 그의 활동상을 되짚어본다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반세기를 넘긴 배우인생의 축적된 연기력은 탁월했다.
강수연은 4세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얼굴에 올망졸망한 이목구비로 눈에 띈 그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1980년대 대한민국 청년들을 설레게 했던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활약했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 출연해 파격적인 노출 신으로 화제를 몰고 왔다. 당시 21세였던 강수연은 ‘씨받이’의 출산 장면만 4박 5일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이 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를 대표하는 베니스영화제 수상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1985년 ‘고래사냥2’ 촬영 땐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할 정도로 연기 열정은 대단했다.
강수연은 1989년 임 감독과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다시 호흡을 맞춰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 수상 영광을 안았다. 비구니 역을 맡은 강수연은 실제 머리를 깎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강수연은 연기를 위해 “비구니 역이니 머리 깎는 것은 당연했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배우로서 ‘프로정신’을 과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강수연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한 점이 주목된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사태로 위기에 처한 BIFF의 집행위원장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맡아 영화제의 명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던 사실은 유명하다. 명배우로서 영화계가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중심 역할을 했던 월드스타의 풍모는 남달랐다. 그가 평소 영화계 인사들을 챙기면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의 속어)가 없냐’.
강수연이 생전 출연한 영화는 공식적으로 1975년 ‘핏줄’부터 최근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 이르기까지 40여 편에 달한다.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연기자로서 늘 부족함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연기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활약상이 기대됐던 55세 월드스타의 너무 이른 퇴장이 안타까운 이유다. 고인의 명목을 빈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