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증오의 독이 흐르는 도시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빨강·파랑 두 가문 간 갈등

우리 사회 편 가르기 연상…증오 아닌 사랑·공감 필요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6-08 19:27:50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당신은 지금 베로나, 아름다운 베로나에 있어요. 모든 이가 서로 미워하는 도시. 떠나길 원하지만 머무르는 곳. 여기에선 왕들의 사랑이 아니라 두 가문이 법을 만드오. 당신의 편을 선택할 필요는 없소. 우리가 오래전부터 정해 놓았으니. 여기에선 증오의 독이 혈관을 타고 흐르듯 우리 삶 속에 흐르고 있소. 물론 우리의 정원에선 꽃이 피고, 우리의 여인들은 아름답지. 마치 지상 낙원 같은 곳이오. 허나 우리의 영혼은 지옥 속에 있소.”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막을 여는 ‘베로나’라는 곡의 가사다. 슬프게도 여기서의 베로나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나라나 도시의 이름으로 바꾸어도 어쩐지 낯설지 않다. ‘모든 이가 서로 미워하는 도시. 증오의 독이 혈관을 타고 흐르듯’이라는 대목에서는 마치 우리의 치부를 들킨 듯 한탄이 새어 나온다. 16세기 영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프랑스에서 2000년대 감성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2022년 한국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 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던 제라르 프레스귀르빅과 뮤지컬계의 혁신적인 연출가로 유명한 레다가 의기투합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2001년 프랑스 파리의 ‘팔레 드 콩그레’에서 초연한 이후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이끌었고,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로 자리매김하였다.

막이 오르면 무대 양쪽에 파랑과 빨강을 입은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를 증오의 감정으로 응시하더니 이내 서로 뒤엉켜 싸운다. 그 와중에 하얀 옷을 너풀거리며 빨강 옷과 파랑 옷의 떼거리들을 잔인한 미소로 바라보는 여인이 있으니, 죽음의 여신이다. 증오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이다. 빨강과 파랑의 싸움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가운데, 원수 집안인 몬터규가와 캐풀렛 가문의 두 어머니가 부르는 ‘증오’(La Heine)라는 노래가 절규처럼 터져 나온다. “우리 집안에선 독이 흐르고 있습니다, 증오라는 이름의. 당신 영혼 속의 뱀과 같은 증오. 당신의 눈 속에서 증오가 불타는 것이 보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가진 감정은 혐오뿐입니다.”

각각 빨강과 파랑으로 대비되는 두 가문의 어머니는 ‘증오가 당신의 영혼 속에 알을 낳으러 오기 전에, 부디 어머니인 여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싸움을 멈추어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어머니들의 간절한 평화의 기도는 무시당한 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자신들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죽음으로 이끈 후에야 두 가문은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원작에 기반한 이 아름답고 강렬한 뮤지컬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로 가득 차 있던 빨강과 파랑의 집안이 자신들의 소중한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나서야 그 싸움을 끝냈다는 것이다.

우리가 ‘러브스토리’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처럼 두 가문의 증오와 혐오가 낳은 비극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수 세기의 시간을 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과 오버랩 된다. 극 중에서의 베로나라는 도시처럼 대한민국은 하나의 국가이자 가족이자 공동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도,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두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있다. 남과 북은 물론이고 동과 서가 원수가 되어 서로를 물어뜯은 지 오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노인과 젊은이도 편을 나누어 서로를 혐오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남과 여도 나뉘어 빨강과 파랑으로 패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뿐이겠는가.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장애인과 비장애인까지도 편을 나누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계를 허물고 통합이 중요시되는 현시대에서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운 칼로써 선을 긋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게다가 어느 지역에서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그 증오의 대상은 대물림되는 듯하다.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처럼 우리의 자식들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서로를 미워하는 법부터 유산으로 상속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증오의 독이 혈관을 타고 흘러’ 유전으로 이어지도록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처럼, 이 싸움의 끝에는 우리의 자식들과 후손들의 가련한 죽음만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의 아들딸들 역시 증오가 아니라, 평화 속에서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데 말이다.

뮤지컬 초반에 피로써 싸우고 있는 두 집안을 향해 베로나의 영주가 호통을 치며 노래한다. “오로지 평화만이 싸울 가치가 있는 것이다”고.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번 주말에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상해보면 어떨까.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3. 3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4. 4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5. 5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6. 6“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7. 7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8. 8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9. 9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10. 10‘삐약이’서 에이스된 신유빈, 중국서 귀화한 전지희
  1. 1“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2. 2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3. 39일 파리 심포지엄…부산엑스포 득표전 마지막 승부처
  4. 4국정안정론 우세 속 ‘낙동강벨트’ 민주당 건재
  5. 5김진표 의장, 부산 세일즈 위해 해외로
  6. 6추석 화두 李 영장기각…與 “보수층 결집” 野 “총선 때 승산”
  7. 76일 이균용 임명안, 민주 ‘불가론’ 대세…연휴 뒤 첫 충돌 예고
  8. 8울산 성범죄자 대다수 학교 근처 산다
  9. 9진실화해위, 3·15의거 참여자 진실규명 추가 접수
  10. 10한 총리 여론조작방지 TF 구성 지시, 한중전 당시 해외세력 VPN 악용 접속 확인
  1. 1센텀2지구 진입 ‘반여1동 우회도로’ 2026년 조기 개통
  2. 2"오염수 2차 방류 임박했는데…매뉴얼 등 韓 대응책 부재"
  3. 3기름값 고공행진에…정부, 유류세 인하 연장 가닥
  4. 4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 조사 다시 시작됐다
  5. 5갈수록 커지는 '세수 펑크'…올해 1~8월 국세 47조원 감소
  6. 6“소비자 부담 덜어 달라”… 농식품부, 우유 업계에 협조 당부
  7. 7'실속형 모델' 갤럭시S23 FE 출시...3배 광학줌 그대로
  8. 810월 부산은 가을축제로 물든다…곳곳 볼거리 풍성
  9. 9KRX, 시카고에서 'K-파생상품시장' 알렸다
  10. 10‘손 놓은’ 외국인 계절 근로자 관리… 5년간 1818명 무단이탈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3. 3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4. 4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5. 5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6. 6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7. 7‘킬러문항’ 배제 적용 9월 모평, 국어·영어 어렵고 수학 쉬웠다
  8. 8함안 고속도로서 25t 화물차가 미군 트럭 들이받아…3명 경상
  9. 9“을숙도·맥도 생태적·역사적 잠재력 충분…문화·예술 등과 연대 중요”
  10. 10광반도체 기술자로 창업 쓴 맛…시설농사 혁신으로 재기
  1. 1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2. 2‘삐약이’서 에이스된 신유빈, 중국서 귀화한 전지희
  3. 3우상혁 높이뛰기서 육상 첫 금 도약
  4. 4LG, 정규리그 우승 확정…롯데의 가을야구 운명은?
  5. 5남자바둑 단체 우승…황금연휴 금빛낭보로 마무리
  6. 6임성재·김시우 PGA 롱런 열었다
  7. 75년 만의 남북대결 팽팽한 균형
  8. 8주재훈-소채원, 컴파운드 혼성 단체전 은메달
  9. 9나아름, 개인 도로에서 '간발의 차'로 은메달
  10. 10롯데, 포기란 없다…삼성전 15안타 맹폭격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싱가포르다움’을 위한 그들의 선택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과학자들의 소통방식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기고 [전체보기]
대통령의 ‘서울·부산 2개 성장 축’ 실현되려면
안전한 세상에서 아동은 꿈을 펼칠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교권회복 시킨다더니…교육부, 교사 집단연가에 으름장
‘고삐 풀린’ 부산 분양가 괜찮나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꼰대세상
파격적 세대교체를 소망한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달’ 대신 ‘손가락’만 보세요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양말 뒤집어 신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자연과 인간을 잇는 원초적 매개체
무대 밖으로 뛰쳐나온 예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PK는 목마르다
이젠 팬이 원하는 감독을 보고 싶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남성만 병역의무
3위가 목표인 대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명란과 옹기
시즈오카의 녹차 젤라또
사설 [전체보기]
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선택과 집중’ 열매를
추석 긴 연휴에도 여야 대치, 민생 협치로 풀어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명절 때 나눌 치매 예방 이야기
역사 전쟁과 자유론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와 의료민영화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해인의 서랍에서
친구에게 추천하는 두 권의 책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독일을 보면서 곱씹어보는 교훈
골짜기 세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불편한 제의
사적 공간의 미학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야만의 과학
밥의 길, 쌀의 미래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글로컬대학 30, 성공은 총장 리더십에 달렸다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잼버리 파행을 부산엑스포 전화위복으로!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화해의 와인
와인, 스토리텔링
특별기고 [전체보기]
수산업 몰락 재촉하는 후쿠시마 방사능 선동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가 비과학적인 이유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12음기법
바이로이트 음악축제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화가 장욱진이 온다
황창배의 ‘곡고댁(哭高宅)’
CEO 칼럼 [전체보기]
해양도시의 메카, 부산
세계박람회와 벡스코 제3전시장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